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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 외쳤는데 ‘갈등만 빗발’

송주희 산업부 차장

입력 2026-03-13 17:38

지면 23면

노란봉투법이 10일부터 시행되자 산업 현장이 요동치고 있다. 시행 이틀 만에 453개 하청 노조 10만 명이 248개 원청 사업장에 교섭을 요구했다고 한다. 원청 생산 공정과 무관한 청소·급식 노조가 원청과 동일한 성과급을 외치고 반도체 공장 발주처까지 교섭 상대로 삼겠다는 주장도 나왔다. 재계가 우려했던 바다.

시행 당일 이재명 대통령은 원·하청 동일 성과급을 선제 지급한 한 대기업을 “매우 모범적인 사례”로 치켜세웠다. 공교롭게도 노동계가 법 시행 전부터 투쟁을 외치며 ‘원청 교섭 1호 사업장’으로 삼겠다고 벼르던 곳이다. 불명확한 기준에 ‘1호만은 피하고 싶다’는 게 기업 공통의 속내인 상황에서 대통령의 칭찬이 오히려 해당 기업에 노조의 집중 타깃이 되는 부담을 가중한 형국이다.

‘찐사장 나와라(노동계)’가 ‘대통령 나와라(공공부문 노조)’로 번지는 데 걸린 시간은 단 이틀이다. 법 설계자들이 탁상에서 논의한 상생의 그림과 현실은 이처럼 어긋나 있다.

법의 취지를 부정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 보장,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는 한국 산업이 질적으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문제는 ‘사용자 범위’와 ‘쟁의 대상’ 등 기준이 모호한 채로 법이 시행됐다는 것이다. 교섭단위 분리 신청이 이어지며 원청·하청 노조 간 ‘노노 갈등’도 불거지는 모양새다. 쏟아지는 요구에 “1년 내내 교섭만 해도 시간이 부족할 것”이라는 현장의 우려가 엄살로 들리지 않는다.

‘하면서 고쳐가면 된다’고들 한다. 그러나 기업들 앞에 놓인 불확실성은 그만한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미국은 카드를 바꿔가며 관세 겁박을 이어가고 중동 리스크로 인한 유가·환율·금리의 ‘3고(高)’ 파고 앞에 투자 결정은 시계 제로 상황이다.

정부는 ‘단체교섭 판단지원위원회’를 통해 혼란을 줄이겠다고 했지만 법적 구속력 없는 자문기구가 복잡한 사안을 명확하게 교통정리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사용자 범위와 교섭 적법성 기준을 조속히 명확히 하고 경영상 불가피한 구조 재편에 대한 별도 판단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법의 취지를 살리려면 현장의 혼란부터 줄여야 한다.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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