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원 분쟁에 변호사비만 500만원…돈보다 ‘분풀이 소송’ 폭주
[화해 사라진 소송공화국]
<상> 민사소송 500만건 육박
여친과 헤어지자 “빌려준 돈 갚아라”
사업 정산금·임대차 보증금 분쟁 등
실익 적더라도 ‘끝까지 가보자’ 확산
전자소송 개선으로 접수 간편해져
민사 집행 사건 10년 새 60% 껑충
수정 2026-03-13 23:36
입력 2026-03-13 18:08
#20대 A 씨는 최근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물품을 구매하려다 사기를 당했다. 상대방에게 5만 원을 송금하고 물품을 받으러 나갔는데 상대방이 이른바 ‘먹튀’를 한 것이다. 참지 못한 A 씨는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과거 거래 사례 등을 찾아 사기 당사자를 특정하고 서울중앙지법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사건을 맡았던 판사는 “예전 같으면 법원에서 볼 수 없었던 사건”이라며 “소송 문턱이 낮아져 쉽게 소송을 제기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최근 수도권의 한 법원에서는 공동사업 정산액이 자신의 몫이라며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의 정산액은 불과 500만 원. 적지 않은 돈이기는 하지만 양측에서 선임한 변호사 선임비 등을 고려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소송인 셈이다. 노종언 법무법인 존재 변호사는 “500만 원 분쟁에 500만 원 이상을 변호사비로 쓰는 사례가 있는데 개인 이익보다 분노가 작용하는 대표적 사례”라고 했다.
경기 침체에 대한 불안감이 심화되고 전세사기 등 각종 경제 사건이 늘어나는 데 따른 ‘민생 소송’과 이른바 개인 간 갈등이 심화되며 “비용과 상관없이 상대를 무너뜨리고 만다”는 ‘분노 소송’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작은 돈이라도 돌려받아야 하는 심리가 커지고 있고 크고 작은 갈등 중 대화로 풀 수 있는 문제도 법적 절차를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젊은 층의 경우 상대와 직접 대면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법원으로 가 장기간·고비용의 소송 절차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다.
13일 법원통계월보·사법연감 등에 따르면 지난해 제기된 민사소송 469만 건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민사 집행 사건으로 127만 건에 달한다. 이는 2015년 80만 건과 비교해 60%가량 증가한 수치다. 민사 집행은 민사소송 판결이 확정됐음에도 채무자가 이를 이행하지 않을 때 강제로 집행하는 절차다. 민사 집행이 가장 많이 늘어난 이유로는 개인 간 금전 분쟁이 큰 몫을 차지한다. 법원은 “고금리 경제 상황과 전세사기에 따른 임대차 분쟁 등 여파로 민사 집행 건수가 크게 늘어나 법원도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30대 초반 A 씨는 2년 전 결혼을 준비하며 수도권 신도시에 전세 보증금 2억 원짜리 신축 빌라 전세를 구했다. 몇 번이나 등기부등본을 확인하고 거래에 나섰지만 1년 뒤 A 씨는 빌라가 경매에 부쳐졌다는 우편을 받게 됐다. 전세권 설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전입신고를 한 만큼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통보된 배당표에는 자신에게 배당될 금액이 없었다. A 씨는 현재 이와 관련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처럼 임대차 보증금 소송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생활형 금전 분쟁에 해당하는 구상금과 대여금 소송도 늘고 있다. 임대차 보증금 소송은 2022년 3720건에서 2024년 7789건으로 2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했고 구상금과 대여금 소송도 1심 본안 사건 기준 2024년 3만 2013건을 기록해 2020년 2만 9700건과 비교해 2300건 이상 증가했다.
소액 금전 분쟁의 경우 예전에는 소송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전자소송 등 도입으로 소송이 쉬워지고 개인 간 분쟁도 말보다 법적으로 풀려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예컨대 과거 연인 사이에 금전을 빌려줬지만 헤어지고 나서 소송을 거는 식이다. 실제로 지난해 30대 여성 B 씨는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1000만 원가량 대여금 청구 소송을 당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B 씨를 위해 남자친구가 수년간 나눠 도움을 준 것이다. 이후 남자친구가 부정행위를 저질러 헤어졌는데 그가 대뜸 돈을 돌려달라는 소장을 보냈다. 증여가 아니라 ‘빌려준 것’이라는 걸 입증해야 하는데 이를 입증하지 못해 결국 B 씨가 승소했다. 임동한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예전에는 소송이 되지 않던 주장까지 소송으로 들어오면서 사건의 난도가 높아지고 부담도 커졌다”며 “기획 및 다수 당사자 소송 증가로 사법 자원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했다.
민사 단독 사건을 담당했던 한 현직 판사는 “전자소송이 도입되면서 법원에 직접 오지 않아도 집에서 클릭 몇 번이면 사건 접수가 된다”며 “소액 사건은 인지액도 적고 당일 판결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 ‘소송을 한번 체험해보자’는 생각으로 쉽게 접근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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