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잘러’ 대통령, 진짜 실력 증명할 때
디테일과 속도전 강조하는 업무 스타일
정책 성과로 보수층에서도 지지세 확산
복합위기 몰려오며 본게임은 이제 시작
만기친람 아닌 시스템 힘으로 대응해야
수정 2026-03-19 06:00
입력 2026-03-19 06:00
김정곤
논설위원
“첫째, 현장을 챙겨라. 둘째, 리스크 관리를 미리 해야 한다. 셋째, 더 투명하게 하라. 넷째, 일이 되게 하라(속도가 중요하다). 다섯째, 관점과 원리를 알고 하라.” 지난해 12월 11일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 업무보고. 전 국민에 생중계된 첫 부처 업무보고 말미에 김민석 국무총리는 이재명 대통령의 업무 지시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며 “앞으로 6개월은 공직사회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내년이 뛰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지난 몇 달간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을 보면 이 같은 업무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난다. 부처 업무보고에서 디테일한 팩트를 근거로 사각지대를 찌르며 부처 장차관과 산하 기관장의 진땀을 빼더니 공식 회의는 물론이고 X(옛 트위터)에서 연일 정책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 생리대·밀가루 등 생활용품의 가격 담합부터 부동산, 교복, 휘발유, 사법 개혁, 기초연금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지시하면서는 “밤을 세워서라도 신속히 하라”며 속도전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에게는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성남시장·경기도지사 시절부터 고질적인 민원 해결과 빠른 업무 처리로 ‘사이다’라는 평가를 받던 이 대통령은 취임 1년도 채 안 된 시점에서 국정 최고 컨트롤타워로서 특유의 실행력을 보여주고 있다. 하이라이트는 부동산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보유 중인 1주택을 내놓은 것이다. 치솟던 휘발유 가격은 30년 만에 ‘석유 최고가격제’ 도입으로 하루아침에 뚝 떨어졌다.
이 같은 업무 성과는 최근 지지율 상승에서도 확인된다. 집권 초기라는 점을 감안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60%를 넘는 국정 지지율을 기록 중이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전통 지지층을 넘어 보수 성향이 짙은 지역과 연령대에서도 지지세가 확산하는 것이 눈에 띈다. 제1 야당이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내홍으로 지리멸렬하다는 점을 고려해도 “정부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국민들의 체감도가 지지율로 반영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형 보스인 이 대통령의 만기친람식 업무 스타일과 속도전에 “멀미가 날 것 같다”며 피로를 호소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깨알 같은 업무 지시가 반복될수록 관료들은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며 대응하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다. 물론 대통령이 직접 어젠다를 던지고 관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 성과는 빨리 나타난다. 그러나 국정운영은 대통령 한 명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힘으로 굴러가야 지속 가능하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챙기다 보면 결정 피로가 누적되며 임기 중후반 국정운영에 병목현상이 생길 수도 있다.
일잘러 대통령 앞에는 진짜 시험대가 기다리고 있다. 미국발(發) 관세 파고에 이어 중동발(發) 지정학적 리스크 등 복합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고금리·고환율·고유가 등 대외 변수에 영향을 받는 악재는 가격통제 같은 단기 처방만으로 방어하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이다.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지역소멸과 산업 구조조정 등 난제도 수두룩하다. 이제 본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대통령의 강점인 실행력은 유지하되 이제는 국정운영 방식과 범위를 한 단계 더 진화시켜야 할 때다. 부처 단위에서 해결 가능한 현안은 장차관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위임하고 대통령은 더 큰 그림에서 국가 백년대계를 이끄는 업무에 매진해야 한다. 역대 어느 정부도 쉽게 손대지 못한 노동·교육·연금 등 구조 개혁이 대표적이다. 진영 논리를 넘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들이다.
김영삼 정부의 금융실명제, 김대중 정부의 부실기업 퇴출 및 노동시장 유연화, 노무현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박근혜 정부의 공무원 연금 개혁 등 역대 정부의 개혁 어젠다들은 단기적인 속도전만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모두 지지층의 반발과 기득권의 저항을 무릅쓰고 국민들을 설득한 끝에 이뤄낸 결과물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개혁은 혁명보다 더 어렵다” “요란하게 뭔가를 개혁하겠다고 하면 실제 결과를 내기 어렵다”며 여당 강경파의 사법 개혁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모두 맞는 말이다. 비단 사법 개혁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조바심은 모든 것을 망친다. 개혁에는 거센 역풍도 분다. 역풍을 어떻게 순풍으로 바꿀 것인가가 개혁의 성과로 나타난다. 이 대통령이 진짜 실력을 증명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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