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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을 건너온 아리랑, K헤리티지가 되다

정민정 문화부장

130년전 미국 땅에 울려 퍼진 아리랑

광화문광장서 BTS 컴백 무대로 펼쳐져

‘열린 구조’ 빚어낸 창조성은 K팝 원형

K컬처 넘어 미래세대 유산으로 확장해야

수정 2026-03-19 23:56

입력 2026-03-19 18:08

지면 30면
[빅히트 뮤직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빅히트 뮤직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896년 5월 8일 자 워싱턴포스트는 ‘하워드의 일곱 한국인: 미국에서 교육받기 위해 고향을 떠나다’라는 제목으로 조선 청년들을 소개했다. 하워드대로 유학 온 청년들이 현지인의 요청을 받고 조선의 가락을 들려줬다는 내용이다. 소식을 접한 음악학자 앨리스 C 플레처가 청년들을 초청해 이들의 노래를 축음기에 담았다. 세계 최초로 ‘아리랑’ 음원을 수록한 음반이다. 원통형 음반에 담긴 ‘러브 송: 아-라-랑(Love Song: Ar-ra-rang)’은 지금도 미국 의회도서관에 보존돼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5집 앨범 ‘아리랑(ARIRANG)’을 소개하는 애니메이션은 130년 전 그 7명에게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미 포브스는 “130년의 세월을 넘어 목소리는 바뀌었지만 노래와 선율은 살아남았고, 그것이 담고 있는 한국인의 회복력, 정체성, 문화적 표현의 의지는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아리랑은 ‘아리랑’ 혹은 ‘아라리’ 같은 후렴을 가진 노래들의 총칭이다. 정본이 없다. 누구나 가사를 더하고 빼며 부르는 열린 구조다. 그래서 지역마다 다르다. 상황에 따라 속도도, 음색도 변한다. ‘긴아라리’라 불리는 정선아리랑은 희로애락을 품고 진도아리랑은 한을 달래고 흥을 돋운다. 세마치장단의 밀양아리랑은 비극을 희망으로 돌려세운다. 무수한 갈래의 가사와 가락, 세대와 지역을 넘어 이어진 변주다. 유네스코가 2012년 아리랑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이유도 ‘무한 변주’가 빚어낸 다양성과 창조성에 있다.

아리랑은 장르를 갈아타며 더 멀리 갔다. 영화가 됐고, 소설로 태어났으며, 뮤지컬 무대에 올랐다. 100년 전 단성사에서 개봉한 한국 최초의 영화 ‘아리랑’은 일제 강점기의 울분을 예술로 남겼다. 1990년대엔 조정래 작가가 대하소설 ‘아리랑’을 펴냈고 이 소설은 또 한 번 서사를 확장해 뮤지컬로 탄생했다. 민족의 고난과 슬픔, 회한과 아픔을 무대 위에 펼쳐냈다. 우리 민족에게 아리랑은 고된 영혼을 달래는 진혼곡이자 환희의 찬가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BTS의 ‘완전체 복귀’ 선언으로 ‘아리랑’은 탁월한 선택이다. 한국에서 출발한 그룹이라는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서로에 대한 그리움, 팬을 향한 사랑을 수렴한다. ‘아리랑’은 그 모든 감정을 담는 강력한 메타포다. 서울도 변신 중이다. 도시는 ‘거대한 아리랑의 도시’가 된다. 주요 랜드마크마다 앨범을 상징하는 대형 조형물이 들어서고 붉은 조명이 도시를 비춘다. 서울 전역이 붉은 빛으로 물든다. ‘무대의 열기를 도시의 온기로’가 핵심 주제다.

BTS 광화문 공연을 며칠 앞둔 할리우드. 그곳에서도 K팝과 국악이 어우러진 특별한 무대가 펼쳐졌다. 15일 ‘케이팝 데몬 헌터스’ 아카데미 시상식 특별 공연에 갓을 쓴 저승사자 댄서들이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등장했다. 소리꾼은 흥겨운 판소리로 무대를 달궜다. 한복을 입은 댄서들은 금빛 천을 휘두르며 화려한 춤사위를 펼쳤다. 이날 ‘케데헌’은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거머쥐었다. K팝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졌다. “케데헌이 K컬처의 자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외신(BBC)의 찬사에 절로 어깨가 으쓱해진다.

130년 전 미국 땅에 처음 울린 아리랑은 그저 이방인의 낯선 노래였다. 한 세기가 흐른 지금, 아리랑은 글로벌 대중음악의 주류로 선 K팝을 상징하는 ‘원형’이 됐다. ‘케데헌’의 매기 강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말했다. “저와 닮은 분들(아시아계)이 주인공인 영화가 나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서 미안하다. 다음 세대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K팝은 장르를 넘어 K컬처로 진화했다. 이제 미래 세대가 향유할 K헤리티지로 도약을 예고한다. K헤리티지는 오늘의 성취를 다음 세대의 문화로 이어주는 유산이다. 대한민국의 상징적 공간 광화문 광장, 그곳에서 펼쳐질 BTS 컴백 무대 ‘아리랑’. K헤리티지를 기약하는 순간이 이제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정민정 문화부장
정민정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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