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와 전기차 시대, 왜 체결 기술인가
임창기 볼츠원 대표
입력 2026-03-21 17:52
임창기
볼츠원 대표
그동안 제조 산업에서 패스너는 ‘완성된 기술’로 간주되어 왔다. 규격은 이미 정해져 있고 성능은 충분하며, 가격 경쟁만 남은 영역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많은 기업들이 체결 기술을 설계의 핵심이 아니라 단순 조달 품목으로 취급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산업 환경의 변화는 이러한 전제를 흔들고 있다.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조건의 변화다. 기존 체결 기술이 설계되던 시대와 지금의 산업은 전혀 다른 요구를 갖는다. 그 차이는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이 전쟁은 전장의 중심이 대형 무기에서 소형 무인 시스템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동 지역의 이란-이스라엘 분쟁 역시 저비용 드론과 무인 장비 중심으로 전개되며 같은 흐름을 드러낸다. 이제 전투 효율은 장비의 크기가 아니라 정밀도와 효율에서 결정된다.
이러한 장비들은 공통적으로 극단적인 설계 조건을 가진다. 제한된 공간, 경량화, 지속적인 진동, 반복 피로 하중이다. 이 환경에서는 단순한 체결로는 부족하다. 체결 구조는 무게와 공간, 내구성을 동시에 좌우하는 설계 요소가 된다.
이 변화는 산업 전반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Boston Dynamics의 로봇은 고밀도 구조와 반복 동작 환경 속에서 작동한다. 체결의 미세한 불안정성도 곧바로 성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Tesla의 휴머노이드 로봇 역시 제한된 공간에서 높은 집적도를 요구하며 체결 방식은 설계 자유도를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드론 산업을 선도하는 DJI의 사례에서도 경량화와 구조 최적화는 이미 핵심 경쟁력이다. 특히 소형 기체일수록 체결 구조의 효율은 전체 성능과 직결된다.
전기차 산업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명확하게 보여준다. 전기차는 배터리 중심 구조로 설계되며 차량 무게가 성능과 직결된다. 배터리 팩은 수백 개 이상의 셀로 구성되고 이를 고정하는 체결 구조 역시 중요한 설계 요소다. 단 몇 킬로그램의 차이도 주행 거리와 효율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체결 기술은 서로 다른 요구를 동시에 만족해야 한다. 강도는 유지하면서 무게는 줄이고, 공간은 최소화하면서 조립성과 정비성은 확보해야 한다. 기존 방식은 일정 부분 대응해 왔지만 복잡해진 시스템 환경에서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또 하나의 변화는 생산 방식이다. 현재 제조 공정은 자동화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체결 작업 역시 로봇과 전동 공구에 의해 수행된다. 이 환경에서는 자동 정렬, 안정적인 토크 전달, 반복 정밀도가 중요하다. 체결 기술은 설계뿐 아니라 생산 효율과 품질을 동시에 결정한다.
결국 기존 체결 기술이 ‘충분하다’는 전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산업의 조건이 바뀌었고, 그 변화는 가장 기초적인 영역에서부터 다시 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역사를 보면 체결 기술의 변화는 산업 전환과 함께 나타났다. 나사 규격의 표준화는 생산 호환성을 만들었고, 새로운 체결 방식은 대량생산과 자동화를 가능하게 했다. 작은 구조의 변화가 산업 전체를 바꾼 것이다.
지금 역시 같은 흐름 위에 있다. 전장의 드론, 산업 현장의 로봇, 그리고 전기차는 모두 새로운 구조적 요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개선이 아니라 제조 환경 자체의 변화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더 강한 볼트가 아니다. 변화된 조건에 맞는 새로운 체결 접근이다. 체결 기술을 단순 부품이 아니라 구조 설계와 생산 공정을 연결하는 핵심 요소로 재정의해야 한다.
산업 경쟁력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요소에서 결정된다. 체결 기술은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넓은 영향을 미치는 영역이다. 지금의 변화는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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