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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조 축포의 그림자

서종갑 산업부 기자

입력 2026-03-23 18:06

지면 34면

18일 수원컨벤션센터는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주가 20만 원, 시가총액 1000조 원 시대 개막. 전영현 삼성전자(005930) 반도체(DS)부문 부회장이 전한 “삼성이 돌아왔다”는 고객사 평가에 주주들은 환호했다. 엔비디아 차세대 언어처리장치(LPU) ‘그록3’ 파운드리 수주 소식과 AMD에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를 우선 공급하기로 했다는 낭보는 이날 축포의 백미였다.

하지만 화려한 숫자 이면에 글로벌 패권 경쟁의 현실은 엄중하다. ‘D램은 못 만들 것’이라던 비웃음에도 중국 창신메모리(CXMT)는 HBM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거대한 내수 시장을 거느린 중국은 우한의 한 공대에만 반도체 담당 교수가 160명에 달할 정도다.

메모리 초호황은 역설적으로 경쟁국의 체력을 키우고 있다. 만성 적자였던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메모리값 급등에 흑자로 전환하고 있다. 전례 없는 메모리 부족 속에 중국산 칩은 과거 엄두도 못 냈던 미국 대기업의 공급망까지 파고들고 있다. 미국이 ‘메이드 인 USA’ 반도체를 자국 기업에 강제하는 ‘반도체판 존스법’이 거론되는 배경이다.

지정학적 갈등도 문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호르무즈해협 미개방 시 이란 발전소를 초토화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지상군 투입 징후가 짙어지며 중동전쟁 장기화 우려마저 제기된다.

위기 속에 누구보다 힘을 합쳐야 할 삼성전자 노사는 둘로 쪼개졌다. 주총날 노조는 파업을 결의했다. 경쟁사 연봉을 보면 이들 요구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 회사가 벌어들인 이익은 성과급뿐 아니라 차세대 반도체 주도권을 유지할 미래 투자에 쓰여야 한다. 디스플레이·배터리 등 중국이 추월하고 있는 산업의 뼈아픈 경험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실에 취해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나눌 과실조차 사라진다.

다행히 23일 전 부회장과 노조가 대화의 물꼬를 텄다. 사측이 핵심 요구를 교섭 테이블에서 논의하자며 전향적으로 나온 만큼 노조도 미래를 위해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위기를 직시하지 못하면 ‘시가총액 1000조 원’이라는 화려한 숫자는 역사 속 추억에 그칠 수도 있다.

산업부 서종갑 기자
산업부 서종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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