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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낮춘 법원 문턱…나홀로 법정 90% 시대, 변호사는 ‘챗GPT’

[화해 사라진 소송공화국]

<중> 낮아진 문턱 소송의 대중화

한쪽 미선임 89.7%·양측도 67% 넘어

‘법률 비서’ 된 생성형 AI…소송 남발 우려

허위 판례 생성 부작용…재판 영향 가능성

매년 1700명 배출…변호사 10년 새 70%↑

로펌, 쿠팡 사태 등 ‘테마소송’ 확산 움직임

입력 2026-03-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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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소송 10건 중 9건은 최소 한쪽 당사자가 변호사 없이 진행하는 ‘나홀로 소송’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소송 시스템이 보편화한 데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직접 소장과 준비서면을 작성하는 사례까지 늘면서 일반인의 소송 진입 문턱이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대법원에 따르면 2024년 민사 1심 본안 사건 처리 건수는 78만 6085건이다. 이 가운데 최소 한쪽 당사자가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사건은 70만 5567건으로 전체의 89.7%를 차지했다. 양측 모두 변호사 없이 소송을 진행한 사건도 67.3%에 달했다. 특히 대여금·임차보증금 등 생활형 분쟁에서는 양측 모두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비율이 81%에 육박했다.

민사소송은 형사사건과 달리 변호사 선임이 의무가 아니다. 여기에 민사 전자소송 비중이 전체 접수의 99%에 달할 정도로 절차가 간편해지면서 소송이 한층 대중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에는 일반인들이 챗GPT 같은 생성형 AI를 활용해 소장을 작성하면서 소 제기가 한층 더 쉬워졌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AI가 작성한 서면이 겉보기에는 완성도가 높아 보여도 허위 판례를 인용하거나 사실관계를 부정확하게 정리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노종언 법무법인 존재 대표변호사는 “AI의 잠재력은 5년 차 이상 변호사 수준에 비견될 수 있지만, AI를 활용하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서면 수준 차이가 크다”며 “AI를 활용한 개인 소송이 늘수록 재판부의 검토 부담도 함께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혼자 3800건 접수까지”…전자소송·AI가 진입장벽 낮췄다

“친구가 1억 원을 빌려간 뒤 연락을 받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오픈AI의 생성형 AI 챗GPT 대화창에 질문을 입력하자 불과 2초 만에 답변이 쏟아졌다. 챗GPT는 “개인적 문제를 넘어 법적 대응을 검토해야 할 단계”라며 “내용증명을 보낸 뒤 지급명령을 신청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하라”고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내용증명과 소장 초안까지 순식간에 써냈다. 변호사가 내놓을 법한 답변을 AI가 뚝딱 완성한 것이다.

오픈AI의 챗GPT, 구글의 제미나이, 앤스로픽의 클로드 등 생성형 AI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AI가 사실상 ‘법률 비서’ 역할까지 수행하는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맞춤형 법률 조언을 얻기 위해 상담료를 내고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야 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기본적인 법률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전자소송 시스템의 보편화까지 맞물리면서 소송 제기의 문턱이 한층 더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법원에 따르면 2024년 처리된 민사소송 가운데 전자소송 비중은 99.8%에 달했다. 민사 1심 본안 사건의 3분의 2 이상은 양측 모두 또는 최소 한쪽 당사자가 변호사 없이 진행한 사건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소장을 작성하고 증빙서류를 갖춰 직접 법원을 찾는 과정 자체가 일반인에게 큰 부담이었지만 이제는 AI가 소장과 준비서면 초안을 작성해주고 전자소송 시스템이 이를 온라인으로 접수할 수 있게 하면서 절차적 장벽까지 크게 낮아졌다는 것이다.

법률 지식이 부족한 개인도 AI의 도움을 받아 서류를 만들고 전자소송으로 곧바로 사건을 접수할 수 있게 되면서 소송은 훨씬 쉽고 빠르게 제기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특히 법조계에서는 전자소송의 편의성과 생성형 AI의 대중화가 결합할 경우 소송 건수가 지금보다 더 가파르게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 소송 남발로 알려진 A 씨는 2024년 상반기 대법원이 심리한 민사 사건 7283건 가운데 3830건을 혼자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A 씨는 소송이 각하되면 항소하고 대법원 판결 뒤에는 재심까지 청구했다”며 “이런 사람이 AI까지 활용한다면 소송은 더욱 급증하고 법원의 행정력 낭비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AI를 활용한 소송이 늘면서 법조계에서는 이른바 ‘환각(할루시네이션)’ 현상으로 오히려 재판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AI가 내놓는 답변은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 법령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제시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법관이 제출된 자료를 일일이 다시 확인해야 해 재판 진행이 지연될 수 있다. 한 부장판사는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된 서면을 보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판례가 들어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혼선을 줄이기 위해 법원도 대응에 나섰다.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20일부터 사법정보공개포털에서 ‘허위 사건번호 확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AI가 생성한 허위 사건번호로 인한 이용자 혼선을 막고 사법 정보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법조계에서는 AI를 재판과 법률 서비스에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을지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해외에서는 이미 AI 기반 법률 서비스와 관련한 갈등도 확산하고 있다. 최근 일본생명보험(닛세이)의 미국 법인은 오픈AI를 상대로 챗GPT가 변호사 자격 없이 법률 조언을 제공해 회사가 불필요한 소송에 휘말리는 피해를 입었다며 1030만 달러(약 156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변호사 10년 새 70% 급증…경쟁 속 ‘기획소송’ 확산

최근 몇 년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매년 1700여 명씩 배출되며 10년 새 변호사 수만 70% 넘게 늘었다. 변호사 수 급증에 따른 사건 수임 경쟁 격화는 법률 시장 구도 자체를 바꾸고 있다. 실제 전국 단위 사무소를 보유한 ‘네트워크 로펌’ 사업 모델이나 분양가상한제 기획 소송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법률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일반인들이 소송을 접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다는 분석이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국내 등록 변호사는 3만 8123명으로 2016년의 2만 1599명 대비 76% 늘었다. 로스쿨 출신 신입 변호사가 해마다 1700명씩 시장에 배출되는 만큼 변호사 시장에서는 ‘공급과잉’을 우려 중이다.

변호사 무한 경쟁 시대가 되다 보니 기획 소송과 같은 소송 형태도 늘고 있다. 지난해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내 A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한 중형 로펌과 손잡고 시공사 GS건설 등을 상대로 중앙지법에 부당이득금 청구 소송을 낸 것이 대표적이다. 2020년 2월 감사원이 아파트 분양가상한제 운영 실태 감사를 통해 해당 단지의 가산비 책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내놓았고 이에 따라 주민들이 총 529억 원 규모의 가산비를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근처 아파트 단지에서 비슷한 소송으로 가구당 수백만 원가량을 돌려받은 사례 또한 이 같은 소송 제기에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법률 시장 포화로 중소형 로펌들이 이 같은 기획 소송을 통해서 큰 수익을 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법조계에서는 지난해 말 쿠팡에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벌어지자 중형급 로펌들이 잇따라 집단소송에 참여한 것 또한 법률 시장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한다. 법무법인 대륜은 지난해 관련 집단소송 참여자를 모집했으며 지금까지 1000명가량이 소송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중형 로펌인 LKB평산 역시 같은 쿠팡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한 집단소송을 진행 중이다. 과거에는 소형급 ‘부티크 로펌’이 주로 기획 소송을 맡았지만 변호사 시장 포화 등으로 이제는 이른바 ‘10대 로펌’까지 기획 소송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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