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최고가격제, 비상시를 위한 대응 수단
김현제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인위적인 낮은 가격, 초과 수요 유발
장기적으론 석유수급 위기 키울수도
에너지 절감 등 정책점검 ·개선 나서야
수정 2026-03-31 05:00
입력 2026-03-31 05:00
중동 사태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주로 사용하는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중동 사태 이전에 비해 두 배 이상 상승하였다. 이는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따른 공급 차질 우려가 가격에 반영된 결과다. 호르무즈해협은 하루에 세계 석유 소비량의 약 20%에 해당하는 원유 및 석유 제품이 지나는 중요한 지역으로 세계 해상 석유 교역의 약 30%를 차지한다. 이번 유가 급등 현상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충격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으로 평가되며 향후 중동 사태의 진행에 따라 석유 수급과 가격의 불확실성도 매우 높아진 상황이다.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국내 석유 제품 가격도 급격하게 상승했다. 정부는 경제 주체들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최고가격제 시행, 유류세 인하 폭 확대, 소비자 직접 지원, 원유 대체 물량 확보, 석유 제품 수출통제 등 다양한 정책들을 검토 및 시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현재 가장 파급력이 큰 정책은 석유 제품 최고가격제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달 13일부터 휘발유·경유·등유에 대해 정유사 공급가격을 기준으로 최고가격제를 시작했으며 이달 27일에는 2차 최고가격을 발표했다.
최고가격제란 시장가격보다 낮은 수준에서 가격 상한을 설정하는 제도로, 가격 급등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는 효과적인 정책이다. 또 국제유가는 매일 등락할 수 있지만 최고가격은 2주 단위로 조정되므로 국제가격 변화가 국내 공급가격에 반영되는 속도를 조절하는 기능도 한다. 반면 최고가격제는 일반적으로 초과 수요를 유발하고 시장에 공급되는 제품량을 감소시키는 부작용을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유 공급 제약으로 석유 제품 수요를 줄여야 하지만 최고가격제는 오히려 소비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고, 정유사는 적정 수준의 이윤을 얻지 못하는 경우 석유 제품 공급을 줄일 수 있다. 정부는 이러한 최고가격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유사 손실에 대한 사후 보전 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석유 제품 소비를 줄이기 위해 차량 5부제와 같은 수요 관리 정책도 함께 시행하고 있다.
최고가격제도와 같은 방식으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평상시에는 시장이 효율적으로 운영되지만 전쟁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시장 실패가 나타날 수 있으며 국가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이번 중동 사태처럼 대규모 공급 충격으로 촉발된 유가 급등 상황은 가계의 실질소득을 줄이고 기업의 생산 비용을 높여 물가와 경제성장 모두에 부담을 주게 된다. 1970년대에 우리나라가 겪었던 두 차례의 석유 파동이 우리나라 경제에 고물가와 저성장을 동시에 초래했던 경험은 이를 잘 보여준다. 결국 이번 최고가격제는 국제유가 충격이 국내로 전이되는 강도와 속도를 조정함으로써 소비자 부담과 생산비 상승의 급격한 변화를 완화하려는 정부의 비상 정책 수단으로 이해해야 한다.
다만 최고가격제는 단기적이며 비상적 정책 수단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정부 발표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약 1억 9000만 배럴(IEA 기준 208일분)의 석유를 비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중동 지역 석유 의존도가 65%에 달하는 상황에서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로 인한 공급 차질이 장기화하는 경우에는 국내 석유 수급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낮은 가격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석유 수요 감축이 필요한 상황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석유 수급 위기를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는 에너지 안보에 있어 평상시의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자원안보 위기 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비축량을 꾸준히 유지해야 하며 석유의 도입선 다변화 정책도 꾸준하게 추진해야 한다.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매우 높은 에너지로 분류할 수 있는 석유 수요 자체를 줄여나가는 정책적인 노력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원료용 석유 수요는 단기적으로 대체가 어렵겠지만 수송용 석유 수요는 친환경차 보급과 자동차 연비 개선을 통해 점진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다.
이번 중동 사태는 우리나라 경제에 부정적인 충격을 주겠지만 에너지 안보 체계를 점검하고 문제점을 발견하며 정책의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중동 사태로 촉발된 공급망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장기적으로 에너지 안보 비용을 줄이고 경제안보를 강화하는 합리적인 정책 대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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