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퀵서비스다” 문이 열리길 기다렸던 남자…그날 밤 세 모녀는 세상을 떠났다
게임 인연→연락 차단→스토킹…집착이 부른 참극
퀵서비스 위장 침입…여동생·어머니·A씨 살해
사흘간 시신 방치 현장서 냉장고 밥·술 섭취
대법원 무기징역 확정…양측 상고 모두 기각
입력 2026-04-05 00:00
그날의 뉴스는 지나갔지만, 그 의미는 오늘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의 그날’은 과거의 기록을 통해 지금을 읽습니다. <편집자주>
“살아있다는 것도 정말 뻔뻔하다는 생각이 든다.”
2021년 4월 5일. 살인 혐의로 구속된 지 하루가 지난 시점에 한 20대 남성의 얼굴과 이름이 세상에 공개됐다. 강력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신상 공개 결정을 끌어냈다.
서울 노원구에서 60대 여성과 그의 20대 딸 둘을 연이어 숨지게 한 이른바 ‘세 모녀 살인사건’의 주범, 김태현이었다.
◇세 번의 만남이 집착으로…연락 차단 순간 스토킹 시작=김태현이 큰딸 A씨와 처음 접점을 만든 건 온라인 게임이었다. 2020년 11월부터 메시지를 주고받던 두 사람은 이듬해 1월 초 서울 강북구 한 PC방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했다.
이후 한 차례 더 자리를 함께한 뒤, 같은 달 23일에는 지인 두 명까지 합류해 네 명이 저녁 식사 자리를 가졌다. 이날이 두 사람의 마지막 대면이었다. 그 자리에서 언쟁이 불거졌고, 동석한 모든 이들과 A씨는 그와의 연락망을 차단했다.
주변인들의 전언에 따르면, 김태현이 힘겨움을 털어놓을 때면 A씨는 늘 그 곁에서 온기를 건넸다고 한다. 밝고 살가운 성격으로 모두에게 기억되던 그였다. 그러나 고작 세 차례에 그쳤던 만남이 김태현에게는 병적인 집착의 씨앗으로 자라났다.
스토킹의 발단은 A씨가 예전에 전송한 사진 속 택배 상자에 노출된 집 주소였다. 김태현은 그 주소를 머릿속에 새겨두고 집 앞에서 잠복하기를 거듭했다.
A씨는 지인들에게 “집 갈 때마다 돌아서 간다. 1층서 스으윽 다가오는 검은 패딩”, “나중에 (김태현에) 소리 질렀다. 나한테 대체 왜 그러냐고”라는 메시지를 띄우며 극심한 공포감을 표출했다.
휴대전화 번호도 새로 교체해 봤지만 김태현의 스토킹을 막지 못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전화기까지 동원해 끈질기게 A씨에게 접촉을 시도했다.
◇퀵서비스 위장 침입…세 모녀 차례로 목숨 잃어=A씨의 거부가 이어지자 내면에 증오를 키워온 김태현은 마침내 살인을 결심했다. 3월 23일 오후 3시께 자택을 벗어난 그는 두 시간여 뒤 A씨 집 인근 PC방에 발을 들였다.
그곳에서 20분가량을 보낸 뒤 오후 5시 25분께 슈퍼마켓에서 흉기 하나를 손에 넣었다. 눈길을 따돌리기 위해 현금으로 다른 물건까지 함께 계산대에 올렸다.
자신의 휴대전화로 살인 방법까지 검색해 본 그는 퀵서비스 기사로 행세하며 A씨 집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집 안에는 A씨의 여동생만 혼자 남아 있었다.
그는 “퀵서비스다. 물건 배달왔다”며 신분을 꾸몄고, 여동생이 “문 앞에 놓고 가라”고 답하자 현관이 열리는 순간을 호시탐탐 노렸다. 문이 벌어지는 찰나, 그는 몸을 밀어 넣어 여동생의 목숨을 빼앗았다.
이후에도 그는 집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 은신했다. 오후 10시 9분께 귀가한 A씨 어머니가, 이어 오후 11시 30분께 문을 열고 들어선 A씨가 차례로 그의 손에 쓰러졌다.
◇사흘간 시신 방치 현장서 냉장고 밥·술 섭취=세 모녀의 목숨을 거둔 직후, 김태현은 A씨의 휴대전화 잠금을 풀어 카카오톡 대화 흔적을 말소했다. 그 후 시신 세 구가 널브러진 그 공간에서 그는 사흘을 버텼다. 냉장고 문을 당겨 꺼낸 음식과 술로 끼니를 채웠다.
같은 달 25일, “A씨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지인의 신고를 접한 경찰이 현장에 진입해 그를 검거했다.
신상 공개 나흘 뒤인 4월 9일, 포토라인에 선 김태현은 무릎을 꿇고 마스크를 끌어내려 맨얼굴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살아있다는 것도 정말 뻔뻔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가족분들, 저로 인해 피해 본 분들 모두에게 사죄드린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범행 동기를 묻는 질문에 그는 “집에 남자가 있어도 제압했을 것”이라며 “그 정도로 배신감과 상처가 컸고, 시간이 갈수록 응어리가 지고 화가 커져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우발성 주장 일축…대법원, 무기징역 확정=법정에서 김태현 측 변호인은 “A씨를 살해할 계획만 있었을 뿐 A씨 어머니와 동생에 대한 범행은 우발적이었다”고 강변했다. 검찰은 세 건 모두 사전에 치밀하게 설계된 범행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요청했다.
1심 재판부는 우발성 범행이라는 주장을 일축하면서도 검찰의 사형 구형에는 동의하지 않고 무기징역을 내렸다.
양측의 항소를 받아들이지 않은 2심 재판부는 “살해 과정이 무자비하고 교화될 가능성도 적어 보이지만 범행 이후 여러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며 자책한 점을 참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사형제가 실효성을 상실한 현재의 형벌 시스템 등을 고려해 가석방이 없는 절대적 종신형으로 집행돼야 마땅하다”고 덧붙이며 원심 형량을 그대로 확인했다.
대법원은 2022년 4월 검찰과 피고인 양측이 제기한 상고를 모두 배척하고 무기징역 판결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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