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에 담긴 ESG
이치한 ESG행복경제연구소장
수정 2026-04-08 19:36
입력 2026-04-08 19:14
환경·사회·지배구조(ESG)는 시장에 윤리를 덧붙이는 규범이 아니다. 그것은 고전 경제학에서 현대 금융으로 이어져 온 사유의 축적이며, ‘보이지 않는 리스크’를 포착하려는 자본의 언어로 이해돼야 한다.
ESG는 흔히 주주 자본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기위한 윤리적 기준이거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대응하기 위한 경영기법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그 출발점은 단순한 도덕적 요구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투자자의 시각에서, 시장이 오랫동안 가격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던 잠재된 위험을 어떻게 포착하고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다시 말해 ESG는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에 관한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특정 시점의 산물이 아니라, 시장의 작동 원리를 둘러싼 오랜 사유의 흐름 속에서 형성돼 왔다. 역사적 맥락으로 보더라도 이는 단절이 아닌 연속이다. ESG는 고전 경제학에서 출발해 근대와 현대 금융을 거치며 축적된 사유가 ‘자본시장 언어’로 재정식화된 개념이다.
아담 스미스가 1776년 출간한 『국부론』은 올해로 250년을 맞는다. 그가 제시한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의 효율성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작동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았다. 시장의 효율성은 저절로 발생하는 결과가 아니라, 일정한 사회적·도덕적 토대 위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는 전제가 이미 내재돼 있었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에서 공감과 도덕적 판단을 시장 외부의 윤리로 분리하지 않았다. 그것은 거래비용을 낮추고 계약 이행의 신뢰성을 높이는, 경제 질서의 핵심 요소였다. 신뢰와 규범이 붕괴된 시장은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ESG가 거버넌스와 사회적 신뢰를 중시하는 근본 이유가 드러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업과 산업 수준의 분석으로 확장한 인물이 알프레드 마샬이다. 그는 수요·공급과 가격 메커니즘을 정식화한 미시경제학의 창시자이면서도, 경제를 정태적 균형이 아닌 장기적 진화 과정으로 이해했다. 기술·조직·제도는 축적되며 상호작용하고, 그 속에서 경쟁력의 차이가 형성된다는 인식이다.
그에 따르면 기업의 비용구조와 생산성은 단순히 기술수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노동자의 숙련도, 조직문화, 산업 환경과 같은 비재무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그 효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경쟁력의 격차로 축적된다. 오늘날 ESG가 기업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는 논리는, 경제를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그의 통찰 속에 이미 내재돼 있었다.
특히 알프레드 마셜의 장기균형 개념은 ESG의 재무적 의미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단기적으로는 환경 투자나 노동·복지 지출이 비용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평균비용을 낮추고 생산성 변동성을 줄이며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만드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마셜의 외부경제 개념 역시 시사점이 크다. 개별 기업의 환경·노동기준 변화는 산업 전반의 비용 구조와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고, 그 효과는 공급망을 따라 확산된다. 이는 ESG가 기업을 넘어 공급망과 산업 수준으로 확장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막스 베버가 말한 ‘자본주의의 정신’은 이러한 경제적 선택을 관통하는 규범적 기반을 설명한다. 절제와 책임, 규율이라는 가치들은 자본주의가 단순한 탐욕의 체제가 아니라, 자기 통제와 예측 가능성을 전제로 작동해 온 질서임을 보여준다.
투자의 관점에서 이는 윤리가 아니라 리스크의 문제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보여주듯, 규범은 행위의 일관성과 신뢰를 통해 불확실성을 낮추는 장치다. ESG는 이러한 윤리를 측정 가능한 기준으로 전환해, 외부화된 리스크를 기업의 경영과 의사결정 구조 안으로 끌어들이는 현대적 메커니즘이다.
요컨대 ESG는 고전 경제학의 문제의식, 미시경제학의 경쟁력 분석, 그리고 사회학적 통찰이 자본시장 언어로 수렴된 결과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의 효율성을 설명했다면, ESG는 그 손이 포착하지 못했던 ‘보이지 않는 리스크’를 가격에 반영하려는 제도적 장치다.
따라서 ESG를 비용이나 도덕적 압박으로만 해석하는 순간, 자본시장이 포착하고 있는 변화의 흐름을 놓치게 된다. ESG는 외부에서 부과된 규범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시장의 리스크 인식과 평가 방식이 확장된 결과다.
그런 점에서 ESG는 고전 경제학에서 이어져 온 자본주의 사유가 오늘의 경제 현실 속에서 다시 드러난, 이른바 ‘오래된 미래’다.
He is…
·한양대 경영학과 졸업, 서강대 경영대학원 석사 전 KB국민은행 수신부장
·전 엄지식품 전략본부장
·현 ESG행복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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