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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과 재구조화 시대의 PF 문언

진혜인 법무법인 바른 구성원변호사

수정 2026-04-09 09:33

입력 2026-04-08 19:19

진혜인

진혜인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PF 대출 관련 AI 이미지.
PF 대출 관련 AI 이미지.

요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단어는 ’신규 대출’보다 ’연장’과 ’유예’다.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24년 3월 말 기준 공동관리 중인 PF 사업장 329개에 대한 금융지원 현황(중복 포함)에서 만기연장이 263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자유예 248건, 신규자금 지원 21건이었다. 같은 해 1차 사업성 평가는 만기연장 3회 이상, 연체 또는 연체유예 사업장을 먼저 겨냥했고, 2025년 9월 말까지 유의·부실우려 사업장 16조 5000억 원이 정리·재구조화됐다. 현재 PF 시장에서는 신규 대출보다 기존 대출의 만기연장과 이자유예가 훨씬 더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자 지급 기일을 뒤로 미뤄 놓고도 그 기간 전체를 연체로 계산해 연체이율까지 붙일 수 있을까. 지난 2월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은 여기에 대해 비교적 분명한 답을 내놨다. 사건은 13개 금융기관이 참여한 1050억원 규모 PF에서 시작됐다. 사업이 지연되자 만기는 세 차례 연장됐고, 이후 대주단과 시행사 측은 특별약정을 통해 기발생 이자와 장래 이자의 지급을 최종 만기일인 2024년 1월 7일까지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만기 후 공매 배당으로도 잔액이 남자 한 저축은행은 2023년 9월 27일부터 2024년 1월 7일까지의 유예기간 전체를 연체기간으로 보고 연 10% 연체이율을 소급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행사 측은 “지급기일 자체를 만기까지 미뤘는데 그 기간을 연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맞섰다.

법원은 시행사의 손을 들었다. 만기와 이자 지급기일이 새로 정해졌다면 그 전에는 아직 이행기가 도래하지 않아 연체이율은 새 만기의 다음 날부터 붙는다고 본 것이다. 금융감독원 공문이나 일반 신용정보 관리규약상 연체 개념도 민사상 지연손해금의 기산점을 정하는 기준은 아니라고 했다. 감독 목적의 ’연체’와 계약상 ’연체’는 같지 않다는 것이다. 나아가 공매대금의 충당순서에 관해서도 별도 약정이 입증되지 않자 법정변제충당 원칙을 적용했다. 같은 ‘유예’라는 표현 아래에서도 지급기일 자체를 늦춘 경우와 이미 기한이 도래한 채무에 대해 회수와 집행만 미룬 경우는 전혀 다르게 읽힌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당국은 반복적인 만기 연장과 이자 유예를 부실 징후로 보고 2024년 PF 대주단 협약을 개정해 2회 이상 만기 연장 시 외부전문기관의 사업성 평가를 의무화하고, 이자 유예도 원칙적으로 기존 연체이자를 상환한 경우에만 허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민사법원은 그런 감독 기준만으로 곧바로 지연손해금의 기산점을 앞당겨 주지 않았다. 결국 연체 여부는 금융감독의 분류표가 아니라 계약서 문언으로 판단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최근 PF 시장은 한쪽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사업성이 낮은 사업장은 정리·재구조화와 만기연장 협상으로 밀려나고 있지만 사업성이 양호한 사업장에는 신규 자금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이 숫자들을 함께 놓고 보면 현재 PF 시장은 ‘좋은 사업장에는 새 돈이 붙고, 어려운 사업장에는 연장·유예·재구조화 조항이 붙는’ 양극화 국면으로 읽힌다. 그래서 유예와 연체를 구분하는 문언은 이제 예외적인 조항이 아니라 회수 구조의 핵심 장치가 됐다.

실무적으로는 세 가지를 특히 갈라써야 한다. 첫째, 지급기일 자체를 뒤로 미루는 진정한 유예인지, 아니면 기한이익 상실 상태는 유지한 채 회수와 집행만 유예하는 것인지 명확히 적어야 한다. 둘째, 유예기간에도 금융기관의 경제적 이익을 유지하고 싶다면 연체이율을 소급해 붙이겠다는 추상적 표현보다 가산금리, PIK(현금 대신 이자를 원금에 가산해 상환하는 구조), 유예수수료 같은 별도 구조로 설계하는 편이 안전하다. 셋째, 공매대금이나 회수금의 충당순서 역시 이자, 지연손해금, 원금 중 어디에 먼저 배분할지 약정으로 못박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으면 법정변제충당이 개입해 당사자가 예상한 회수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

유예는 면제나 연체와 동일하지 않은 말이다. 문제는 이러한 구별이 계약 문언에서 명확히 드러나지 않을 때 발생한다. 특히 만기 연장과 재구조화가 일반화된 상황에서는 지급기일의 유예인지 회수의 유예인지에 따라 법적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결국 회수 결과는 계약 문언의 정밀도에 크게 좌우된다.

진혜인의 부동산 문법
진혜인의 부동산 문법

She is…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졸업,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전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전 다올자산운용 대체투자팀 과장

·현 법무법인 바른 구성원변호사

·현 전북특별자치도 고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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