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는 로봇, 사랑하는 로봇…인간다움을 묻다
■ AI 로봇 소재 연극·뮤지컬 봇물
천선란 소설 ‘뼈의 기록’ 연극 초연
장의사 로봇 통해 삶과 죽음 조망
토니상 6관왕 ‘어쩌면 해피엔딩’
‘천개의 파랑’ 등 사랑 다룬 작품도
로봇, 타자서 인간 비추는 거울로
감정과 윤리·존재의 의미 되물어
수정 2026-04-09 23:39
입력 2026-04-09 17:36
로봇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잇따라 무대에 오르고 있다. 인공지능(AI) 로봇이 인간과 비슷한 수준으로 빠르게 진화하면서 로봇과 인간의 관계,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가 무대로 확장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예술의전당은 내달 10일까지 자유소극장에서 연극 ‘뼈의 기록’을 선보인다. 예술의전당과 할리퀸크리에이션즈가 공동 기획한 이 작품은 천선란 작가의 로봇 3부작 가운데 하나인 동명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2085년 인류의 행성 이주 프로젝트가 시작된 미래를 배경으로, 장의사 로봇 ‘자비스’가 영안실에서 시신을 염하며 인간의 삶과 죽음을 로봇의 시선으로 비춘다. 장한새 연출은 간담회에서 “무대가 거대한 관처럼 보이도록 구현했다”며 “인간들이 더 이상 쓸모없는 지구를 버리고 떠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차갑게 드러내려 했다. 애도가 부재한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를 물으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로봇 ‘자비스’는 다양한 고독사와 사고사, 자살 등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삶을 마친 이들의 몸을 닦고 배웅하며 죽음이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장례식장 청소부인 ‘모미’는 아름다움, 죽음, 마음과 같은 인간다움에 대해 일깨워준다. 천 작가는 “이 작품에서 로봇을 따뜻하게 그린 이유는 고립된 인간에게 어쩌면 위로가 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비스 역에는 강기둥, 장석환, 이현우 배우, 모미 역에는 정운성·강해진 배우가 캐스팅됐다.
이처럼 로봇을 통해 인간다움을 묻는 시도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대표적인 사례다. 2015년 초연 이후 꾸준히 사랑받아온 이 작품은 지난해 토니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해 6관왕을 차지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국내에서 관람 열풍이 불면서 지난해 서울 공연에 이어 전주, 대전 등 지역 공연에서 매진 행진을 이어갔다. 오는 11~12일에는 경기아트센터, 다음달 16~17일 울산문화예술회관, 23~24일 당진 문예의전당, 30~31일 경기도 고양 아람누리 등에서 관객을 만난다.
천선란의 로봇 3부작 중 하나인 ‘천개의 파랑’도 뮤지컬과 연극으로 제작돼 관객을 만났고 워너브러더스와 계약을 맺고 영화 제작을 앞두고 있다. 이 작품은 폐기 위기에 놓인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와 안락사 직전의 경주마 ‘투데이’, 상처 입은 세 모녀가 서로를 치유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밖에 죽은 아내를 로봇으로 만든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창작 뮤지컬 ‘유앤잇(You & It)’은 2024년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등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은 로봇과 인간의 사랑, 그리고 상실과 치유를 다룬 작품이다.
최근 무대에서 로봇을 대하는 시각이 달라진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과거에는 인간과 대비되는 타자로 소비됐다면, 이제 인간의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이자 인간을 비추는 거울로 등장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존재를 통해 오히려 인간의 감정과 윤리,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 구도다.
장 연출은 “과거에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기술을 떼놓은 상태에서 인간을 이해하기 힘든 시대가 됐다”며 “AI 로봇과 공존하는 시대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기 위해선 로봇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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