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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아쉽다, 1000명 죽일 수 있었는데”…희대의 살인마 정남규의 ‘마지막 타깃’

수정 2026-04-12 08:04

입력 2026-04-12 00:10

그날의 뉴스는 지나갔지만, 그 의미는 오늘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의 그날’은 과거의 기록을 통해 지금을 읽습니다.<편집자주>

“에이 끝났네, 1000명은 죽였어야 했는데 아깝다”

19년전 오늘인 2007년 4월 12일. 대법원은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힌 연쇄살인범 정남규에게 사형을 확정했다. 그는 검거 당시부터 재판 과정까지 일관되게 반성 없는 태도를 보였고 “피 냄새가 향기롭다”, “살인을 못해 답답하다”는 발언으로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정남규의 범행은 2004년 1월 경기도 부천에서 시작됐다. 어린이 2명을 유인해 살해한 사건을 시작으로 약 2년 3개월 동안 서울과 수도권을 오가며 연쇄 범행을 이어갔다. 범행 대상은 대부분 자신보다 약한 여성과 미성년자였으며 특정한 원한이나 금전 목적 없이 살인 자체에서 쾌락을 느끼는 양상을 보였다.

그는 범행을 반복할수록 더욱 치밀해졌다. 폐쇄회로(CC)TV가 많은 지역을 피하고, 족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신발을 변형했으며 체력 유지를 위해 술과 담배를 끊고 매일 달리기를 하는 등 ‘완전범죄’를 위한 준비에 집착했다. 경찰 조사에서도 그는 범행 장면을 상세히 설명하며 오히려 만족감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2006년 4월 현장검증을 위해 정남규가 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2006년 4월 현장검증을 위해 정남규가 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유영철은 한 수 아래”…왜곡된 우월감과 통제 불능의 충동=정남규는 다른 연쇄살인범과 자신을 비교하며 왜곡된 우월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동대문구 이문동 사건을 두고 자신이 저지른 범행이라고 주장하며 다른 범인이 자백한 사실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수사 과정에서 그는 “더 많이, 더 완벽하게 죽이고 싶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붙잡힌 정남규는 호송차 안에서 “에이 끝났네 1000명은 죽였어야 했는데 아깝다”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프로파일러 표창원은 그의 범죄를 ‘쾌락형 살인’으로 분류했다. 단순한 분노 표출이나 보복이 아니라 살해 과정 자체에서 심리적 만족을 얻는 유형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그는 “살인을 하면 우울감이 사라지고 성취감이 느껴진다”고 진술했다.

어린 시절 가정폭력과 성폭력, 학창 시절 집단 괴롭힘 등은 그의 반사회적 성향 형성에 영향을 준 요인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범행 방식의 잔혹성과 반복성, 그리고 피해자 선택의 일관성 등을 고려할 때 단순한 환경적 요인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람 못 죽여 우울”…사형 확정 뒤에도 멈추지 못한 집착=사형이 확정된 이후에도 그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못 끊겠다”며 사형을 서둘러 집행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수감 이후에도 살인 충동을 호소하며 극도의 불안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2009년 11월, 그는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형 확정 후 약 2년 7개월 만이었다. 그의 마지막 살해 대상은 그 자신이었다. 교도관들은 정남규를 발견해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다음 날 새벽 사망했다. 정남규 빈소에는 오직 그의 매형만이 찾아왔으며 유가족의 외면 속 정남규 시신은 화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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