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을 내다보는 中, 5년도 위태로운 韓
백년 앞 내다보고 경제 설계
10년 전부터 에너지원 다변화
최근 석유 위기 속 효과 톡톡
정권마다 정책 뒤집는 韓과 대조
입력 2026-04-12 18:00
‘百年科學城 奮鬪每一天(백년과학성 분투매일천)’
백년의 과학성에서 매일을 분투한다. 이달 9일 방문한 중국 베이징 화이러우 과학성 본관 1층 로비를 장식한 문구다. 도심에서 1시간 30분가량 북동쪽으로 떨어져 있는 이곳에 베이징시는 2019년 연구시설은 물론 주거·문화·의료까지 갖춘 기초과학 클러스터를 조성했다. “100년 과학도시로 키우겠다”는 선언과 함께다.
언뜻 진부해 보이지만 그간 봐온 중국을 가장 잘 설명하는 문구라는 생각이 들어 무의식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부임 3개월도 채 되지 않았지만 현장을 다니며 느낀 점은 분명하다. 중국은 모든 계획을 최소 수십 년 단위로 세우고 이에 맞춰 자원을 배분한다.
수도 베이징만 보더라도 2035년 세계 최고 과학기술 혁신도시 도약을 목표로 2017년 ‘3성 1구’ 과학 클러스터 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화이러우 과학성(기초과학), 창핑 미래과학성(기업 주도 응용연구), 중관춘(첨단기술 창업), 이좡 경제기술개발구(첨단기술 생산·실증)를 축으로 60여 개 특화 단지까지 구축했다. 정부가 큰 틀을 설계하고 자본을 투입하면 지방정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인재를 유치하고 성과를 낸다. 이 클러스터는 나아가 인근 징진지(베이징·톈진·허베이) 생태계와 연결된다. 베이징이 연구와 혁신을 담당하고 톈진과 허베이가 생산을 맡는 구조다.
중국의 이 같은 백년대계가 가장 큰 저력을 발휘한 분야로 에너지를 꼽을 수 있다. 단순히 원유를 많이 비축하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에너지원 자체를 다변화해 의존도를 낮춰왔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고질적 스모그 문제와 높은 원유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2014년 ‘에너지 혁명’을 선언했고 그 이후 중국 전역에는 빠르게 전기차가 깔리기 시작했다. 발전 부문에서도 석유를 사실상 배제하고 태양광과 풍력 중심으로 전환한 결과 석유 의존도는 약 20%로 한국(35~40%), 미국(30%)보다 대폭 낮은 수준까지 끌어내렸다. 이란산 원유의 80% 이상이 중국으로 판매된다고는 하지만 실제 중국의 전체 수입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공개 석상에서 만난 학자들은 하나같이 에너지 강국의 자신감을 드러냈다. 린이푸 베이징대 신구조경제연구원장은 “이란산 석유 비중이 제한돼 있고 국유 기업 중심 구조로 가격 상승 충격도 일정 부분 통제할 수 있다”며 타 국가 대비 타격이 적다고 강조했다. 베이징대 광화관리학원의 옌써 교수는 양회 직후 열린 경제 전망 콘퍼런스에서 “유가 급등으로 유럽과 한국·일본 기업들이 주문을 소화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중국 기업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언급하기까지 했다.
최근 취재차 방문한 베이징 수소 전시회에서도 비슷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수소 설계·조달·시공(EPC) 업체 관계자는 중국이 수소산업을 빠르게 확대해나가고 있는 배경에 대해 “전력 비용이 낮고 신장 등 광활한 지역에서 태양광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도 단기간 내 100% 청정수소 전환은 어렵기 때문에 그레이수소(화석연료를 사용해 생산한 수소)에도 일정 수준 보조금을 유지하며 산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14차 5개년 계획(2021~2025)에 수소를 전략산업으로 처음 지정했고 올 3월 양회에서 발표한 15차 5개년 계획에서 이를 그대로 유지했다.
중국은 이렇듯 철저한 계획하에 산업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데 정권에 따라 원전 등 신재생 정책이 흔들리는 한국과 대비된다. 최근에는 생태계가 아직 자리 잡지 않은 수소 업계에 그레이수소 퇴출 논의로 혼란을 키웠다. 수소 전시회에서 그레이수소 사업을 설명하던 중국 기업 관계자는 “한국은 자원이 없어서 전력 발전 비용 절감에 한계가 있다”는 기자에게 측은한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사실은 넓은 땅덩이보다 뚝심 있는 계획이 더 부러웠다는 걸 그가 알아챘을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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