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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상장, 주주 보호 엄격 심사…획일 규제에 “벤처생태계 위축될 것”

[7월부터 중복상장 원칙금지]

경영·영업 독립성 등 종합 평가

심사문턱 높여 예외적으로 허용

“韓 자본시장 특수성 고려 안해

자회사 주주 역차별 우려” 지적

VC선 “벤처혁신기업은 예외를”

수정 2026-04-16 23:34

입력 2026-04-16 17:57

지면 19면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중복상장 제도개선 의견수렴을 위한 공개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중복상장 제도개선 의견수렴을 위한 공개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중복상장 원칙 금지’를 기조로 제도 개선에 속도를 높이면서 산업 경쟁력과 혁신 기업 성장이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인수합병(M&A)과 기업공개(IPO)를 통한 자금 조달 경로,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 등 국내 자본시장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자회사 상장을 막을 경우 오히려 일반 주주 보호라는 제도 취지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16일 중복상장 제도개선 의견수렴을 위한 공개 세미나를 개최하고 중복상장 심사 대상과 기준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거래소는 이달 중 규정안 개정예고를 실시하고 상반기 중 개정 절차를 완료해 이르면 7월부터 중복상장 규제를 시작하겠다는 계획이다.

중복상장 심사 대상은 크게 세 가지다. 상장사가 물적 분할해 설립한 회사가 신규 상장하는 경우, 상장사가 지주회사 전환을 목적으로 인적 분할한 회사를 재상장하는 경우, 상장사가 신설 또는 인수한 회사를 상장하는 경우 등이다. 사실상 상장사의 모든 비상장 자회사를 심사 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심사 기준은 영업 독립성, 경영 독립성, 투자자 보호 등 세 가지다. 영업 독립성은 자회사의 주된 영업이 모회사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지 여부를 심사하며 경영 독립성은 자회사의 의사결정과 지배구조가 독립적인지 여부를 본다. 투자자 보호와 관련해서는 모회사 일반 주주 보호를 위한 방안을 충실히 이행했는지 심사하는데 특히 ‘모회사 일반 주주 동의 여부’가 요건에 포함됐다.

정부는 지배주주들이 지배력 유지를 위해 중복상장을 남용함에 따라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초래하고 있다고 봤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증시 중복상장 비율(시가총액 기준)은 11.2%로 일본 4%, 대만 2.7%, 중국 2.4% 등 주요국 대비 크게 높다. 2000~2024년 중복상장된 261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자회사 상장 6개월 후 모회사 주가가 평균 10.81% 떨어진 것으로도 분석됐다.

그러나 금융 당국의 중복상장 제도 개선 방향이 자회사 상장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끊이지를 않는다. 순환출자 구조의 단순화를 위해 과거 정부 차원에서 지주회사 전환을 촉진했던 점,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제조업 비중이 높아 IPO를 비롯한 자금 조달 수단에 상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 등 한국 자본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방한철 한국투자증권 IPO 본부장은 “과거 정부 정책에 따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기업과 M&A를 통해 인수한 기업 등은 급작스러운 정책 변화에 큰 혼란을 겪고 있다”며 “기업 경쟁력 유지와 강화 차원에서 유연한 정책 적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도 “문제의 핵심은 상장 여부가 아니라 일반 주주의 지분 가치와 현금 흐름이 희석되는 구조”라며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로부터 배당이나 현금 흐름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구조 설계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벤처캐피털(VC) 업계는 벤처혁신기업 등에 대해 중복상장 규제 예외 적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벤처기업 간에는 M&A를 통해 몸집을 불려나가고 그 과정에서 중복상장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데 이를 일괄적으로 금지할 경우 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안상준 한국VC협회 부회장은 “공적 펀드 투자금 회수의 핵심 경로가 IPO인데 자회사 상장이 막히면 벤처 생태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개별 기업 관계자가 공개적으로 중복상장 규제에 우려를 표하는 이례적 장면도 나왔다. GS글로벌의 자회사인 GS엔텍 관계자는 “모회사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자회사까지 일괄 규제로 상장을 막으면 소수 주주와 직원 피해가 불가피하다”며 “모회사 주주뿐 아니라 자회사 이해관계자 보호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복상장 규제 세부 내용에 대해서도 각계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자회사가 중복상장을 하려면 모회사 일반 주주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대표적이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모회사 일반 주주 과반의 동의를 득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사회를 패싱하고 주주총회를 통한 일반 주주 다수결에만 떠넘기는 식의 제도는 우려된다”고 말했다. 상장협에서는 “상장 시점의 주주 동의만 가지고 일반 주주를 보호할 수 있을지 모호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번 세미나가 ‘맹탕 세미나’가 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모회사 일반 주주 동의의 기준을 포함해 업종별, 기업 규모별 예외 기준, 자회사 소액주주 보호 방안 등 업계에서 관심을 가졌던 세부 내용들은 예시조차도 제시되지 않았다. 임흥택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상무는 “추가적인 세미나가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면서도 “이달 규정 개정예고가 나가더라도 별도의 의견 수렴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일반 주주는 더이상 침묵하는 다수가 아니다”라며 “중복상장 원칙 금지 방안은 새로 도입된 주주 충실 의무를 상장 제도에도 적용하는 것으로 자본시장 체질 개선을 위해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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