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1호선서 버스 준공영제까지…뉴욕 넘어선 ‘교통 혁신 55년’
[고유가에 빛발한 K대중교통의 힘]
하루 1000만명 이용 ‘시민의 발’
지하철·버스·따릉이 촘촘히 연계
대중교통 접근성 85%가 15분 이내
1회 이상 환승한 비율은 90% 넘어
교통수단 분담률 영국 런던의 2배
차량 5부제 등에도 이동제약 없어
입력 2026-04-17 19:15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장기화로 국제유가가 출렁이는 가운데 서울의 촘촘한 대중교통 체계가 시민들의 이동 부담을 흡수하며 일상을 떠받치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동차를 몰수록 유류비 부담이 커지는 고유가 국면에서도 서울 시민들은 지하철과 버스, 따릉이, 환승 체계를 기반으로 비교적 큰 혼란 없이 평소와 다름없는 출퇴근과 이동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대중교통 이용률과 넓은 커버리지, 상대적으로 저렴한 요금 체계가 서울의 ‘고유가 내성’을 키운 핵심 배경으로 꼽힌다.
17일 서울특별시버스운송사업조합이 서울·런던·뉴욕의 대중교통(버스·지하철·철도) 수단분담률을 비교한 결과 서울이 64.4%(2023년)로 가장 높았다. 뉴욕은 46.3%(2024년), 런던은 34.0%(2024년)였다. 수단분담률은 시민들이 하루 이동 과정에서 어떤 교통수단을 얼마나 이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4년 서울의 하루 평균 대중교통 이용객은 941만 명으로 서울시 인구와 맞먹는다. 서울 시민의 일상이 이미 대중교통 중심으로 짜여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구조는 고유가 시기에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자가용 의존도가 높은 도시는 유가가 오르면 시민 부담이 곧바로 커지지만 서울은 상당수 시민이 평소에도 지하철과 버스를 기본 이동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어 충격이 상대적으로 작다. 기름값이 급등해도 이동 방식을 갑자기 바꾸지 않고 기존 대중교통망 안에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서울 대중교통의 가장 큰 경쟁력은 접근성이다. 국토교통부의 ‘대중교통현황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대중교통 접근 시간은 15분 이내가 85.7%에 달했고 15분 이상은 13.7%에 그쳤다. 핵심 축은 지하철이다. 서울 대중교통 확충은 노선 연장을 넘어 도시 구조를 바꿔왔다. 시작은 박정희 정권 당시인 1971년 추진된 ‘1기 지하철’ 구축이었다. 당시 급격한 도시 팽창으로 도로 교통만으로 시민 이동을 감당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반영해 처음으로 도심 속 대량 수송망이 마련됐다. 이때부터 대중교통이 본격적으로 시민들의 주요 이동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1990년대의 ‘2기 지하철’ 확충은 도심을 넘어 강북과 강남, 외곽 지역을 잇는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5~8호선은 그간 서울 중심부에 머물렀던 지하철망이 서울 전역으로 뻗어나가며 일상 속 인프라로 발전하게 됐다. 2000년대 초반 5~8호선 공사가 마무리됐고 여기에 광역철도와 신도시 노선 확충이 이어지면서 서울 도시철도의 범위는 수도권 전체로 넓어졌다. 지난해 수도권 전체 역 수는 655개, 총 노선 길이는 1393㎞에 이른다.
지하철망 구축 다음은 버스제도 개편이었다. 공영·민영제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2004년 각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준공영제가 도입됐다. 버스는 수익성이 낮은 지역까지 연결하는 공공적 기능을 강화했고 버스와 지하철을 따로 운영하던 구조를 하나의 체계로 묶어 ‘환승 중심 도시’의 기반을 닦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서울의 버스 정류장은 현재 6717개로 2004년(5152개)보다 30.4% 늘었다. 버스 중앙차로 도입으로 정시성과 운행 안정성도 높아졌다. 철도가 닿지 않는 생활권 곳곳을 버스가 메우고, 다시 지하철과 환승으로 연결되면서 자가용 없이도 도시 전역을 이동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따릉이와 한강버스 등 보완 교통수단도 사각지대를 줄이고 있다. 따릉이는 2010년 프랑스의 공공 자전거 시스템 벨리브를 모델로 도입됐다. 서울의 교통체증과 대기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재정 낭비 우려에 대한 거센 반발과 도입 이후 수년간 시민들의 외면을 받아왔다. 하지만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 등 교통 체계와 연계는 물론 주거지역 곳곳에 확충하며 점차 시민들의 이용이 늘었다. 서울 전역의 따릉이 대여소는 2790곳, 자전거는 4만 5000대 규모다. 현재는 ‘퍼스트·라스트 마일’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도입된 한강버스도 마곡~여의도~잠실 구간을 잇는 새로운 이동 수단으로 자리 잡는 중이다.
이런 촘촘한 교통 체계를 기반으로 한 서울 대중교통의 진짜 힘은 환승 체계에 있다는 평가다. 2024년 기준 서울 대중교통 이용자 가운데 1회 이상 환승한 비율은 90.9%에 달했다. 이동민 서울시립대 교통학과 교수는 “수도권 전체의 넓은 지역과 광범위한 철도망을 포괄하는 환승 시스템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라고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낮은 요금도 경쟁력이다. 서울 지하철 기본요금은 2024년 기준 1400원으로 뉴욕 2.9달러(4238원), 런던 2.8파운드(5192원), 파리 2.5유로(3862원), 도쿄 180엔(1747원)보다 낮다. 기후동행카드와 ‘K-패스’ 같은 정액·할인형 교통 상품도 비용 부담을 더 낮추고 있다. 고유가 시기일수록 이런 요금 구조는 시민 가계의 부담을 덜어주는 안전판이 된다.
다만 대중교통 이용객이 늘면서 일부 환승역의 복잡한 동선과 시설 간 연계 부족은 여전히 과제로 꼽힌다. 한은서 서울연구원 스마트교통연구실 연구원은 “이용자 행태를 고려해 환승역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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