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돈 버는 미국과 씁쓸한 ‘기생충’ 경제 [윤경환 특파원의 브레이킹 뉴욕]
기름값 빼면 美 전쟁 체감도 매우 낮아
월가 기록적 수익에 원유 수출도 급증
승용차 5부제, 나프타 대란 등 남 얘기
韓, 환율 요동 등 폭우 속 반지하 신세
방산 수출, 중동 재건 등 기회 모색해야
입력 2026-04-19 17:35
최근 미국 뉴저지주의 한 고소득자 주거 지역에서 한국 기업 주재원과 중동 정세를 논하며 식사를 하다가 문득 식당 안을 둘러봤다. 당시만 해도 휴전 합의 전이었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에너지 시설 타격 위협과 호르무즈해협 봉쇄 장기화에 대한 걱정을 서로 심각하게 늘어놓던 참이었다. 기묘하게도 눈에 들어온 모든 미국인의 표정은 전쟁이 언제 일어나기라도 했냐는 듯 여유롭고 평온해 보였다. 중동 사람들은 빗발치는 미사일에 한창 생존의 공포를 느낄 시간대였다. 영화 ‘기생충’에서 폭우가 내리는 동안 아랫동네 반지하 집 가족은 침수로 혼비백산하고 윗동네 부잣집 가족은 ‘짜파구리’를 즐기던 장면이 눈앞의 현실인 듯 머리를 스쳤다. 동석한 주재원도 “한국은 기름을 아끼겠다고 승용차 5부제도 한다더라”며 씁쓸해했다.
미국은 이란 전쟁의 명백한 당사국이지만 정작 현지에서 느끼는 전쟁 체감도는 매우 낮은 편이다. 전장이 본토에서 매우 먼 데다 휘발유 값이 갤런당 1달러 남짓 오른 것을 제외하면 피부에 와닿는 경제적 충격도 미미하기 때문이다. 실제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4월 경기 동향 보고서(베이지북)에서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물가는 “적당히 오르고 있다”고 평가했고 고용은 “안정적이거나 약간 증가했다”고 진단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아예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물가는 하락하고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사람이 죽는 중동은 물론 에너지난으로 몸살을 앓는 다른 나라들의 고통은 미국에서 소수의 엘리트나 관심을 두는 내용이다.
JP모건·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씨티 등 미국의 대형 은행들은 외려 전쟁에 따른 거래량 증가로 기록적인 이익을 거뒀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나스닥종합지수도 전쟁 불확실성을 비웃듯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달 23일과 이달 7일, 17일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이란이 메시지를 내기 직전 원유 선물 거래가 급증하는 일도 있었다. 이란 외교를 주도하는 트럼프 대통령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사모펀드 운용사에도 중동계 자금이 크게 몰렸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전쟁부) 장관은 전쟁 직전 방위산업 상장지수펀드(ETF) 투자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다.
미국은 국가적으로도 호르무즈해협이 막힌 틈을 타 원유 수출량을 크게 늘리고 있다. 나아가 다음 달 미중 정상회담에서 자국산 원유 수입을 중국에 요구할 생각까지 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또한 에너지 순수출국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2.0%에서 2.1%로 높였다. 이에 더해 미국은 전쟁 종료 후 협상을 통해 중동에서 막대한 이권을 취할 수도 있다. 군비 지출 등 현 경제적 부담을 얼마든지 상쇄할 힘이 있다는 뜻이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자국의 의사와 전혀 무관한 전쟁으로 고유가·고환율·고물가라는 삼중고만 떠안았다. 중동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다 보니 나프타를 기반으로 한 석유화학 산업이 곧장 흔들렸고 금융시장은 세계 최대 수준으로 요동쳤다. 외교적으로도 군함을 파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독설만 듣고 있다. 전쟁이 끝났을 때 손실을 만회할 뚜렷한 방도도 없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비전투국 가운데 최대 피해국은 한국”이라는 뼈아픈 평가까지 내렸다.
더 답답한 현실은 전쟁이 지나가도 고유가와 공급망 불안이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정학적 위기를 계기로 풍부한 자원의 저택에 사는 국가와 반지하의 굴레에서 발버둥치는 나라 간 격차가 더 벌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결말이 영화 기생충처럼 비극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이 억울한 것은 일본·유럽 등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이번 위기를 반면교사로 에너지 공급원 다변화, 방산 수출 증대, 중동 재건 사업 참여 등 새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머리를 맞대야 할 시기는 종전 논의가 본격적으로 오가는 바로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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