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美와 경제격차 두 배…외교력은 파키스탄에도 밀려
저성장 고착 속 이란전쟁 직격탄
10년새 GDP差 4.6조弗→9.5조弗
글로벌 시총 톱10서 유럽기업 전멸
종전 논의서 배제…존재감 희미해져
입력 2026-04-21 17:43
쇠퇴의 늪에 빠진 유럽이 10년 새 미국과의 경제 규모 격차가 두 배 가까이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성 정체와 투자 부진으로 저성장이 고착되는 가운데 이란 전쟁을 계기로 에너지 수급 불안과 외교력 상실까지 겹치자 유럽의 존재감이 약해지고 있다.
20일(현지 시간)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유럽연합(EU)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약 21조 2315억 달러(약 3경 1225조 원)로 집계됐다. EU의 경제 규모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20조 달러 선을 돌파했으나 같은 기간 미국의 GDP(30조 7670억 달러·약 4경 5249조 원)와의 격차는 9조 5355억 달러(약 1경 4021조 원)까지 벌어졌다. 2015년 4조 6378억 달러 수준이던 이들의 경제 체급 차이가 10년 만에 두 배 이상 확대된 셈이다. 다만 환율 변수를 배제한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는 격차가 약 1조 3000억 달러 수준으로 줄어든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유럽은 이제 ‘종이호랑이’ 신세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직된 노동시장과 과도한 규제로 노동생산성이 저하되고 혁신을 위한 투자도 위축되면서다. IMF에 따르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국가)의 경제성장률은 2024년 0.9% 2025년 1.2%로 같은 기간 각각 2.8%, 2.0%인 미국보다 낮다.
실제 프랑스 중앙은행의 장기 생산성 데이터를 보면 2024년 기준 유로존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미국 대비 82%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EU 기업들의 연구개발(R&D) 지출 증가율도 2.9%에 머물며 전 세계 평균(6.3%)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현재 전 세계 시가총액 10위권 내에서 유럽 기업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고 유럽 시총 1위인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은 세계 20위에 그친다.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는 이란 전쟁이라는 충격에 치명타를 입었다. EU 통계청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EU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57%에 달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이 예상치 못한 대외 충격이 에너지 공급망을 흔들 때마다 유럽의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지는 배경이다. 이번 이란 사태와 관련해서도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은 올해 유로존 성장률 전망을 1.2%에서 0.9%로 하향 조정하는 한편 에너지 충격이 장기화할 경우 성장이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쟁의 여파에 따른 에너지 쇼크는 유럽 주요국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로 번졌다. 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 주요국의 국채 매도세가 강해지며 금리가 급등하는 현상이 이를 드러낸다. 이 가운데 영국 국채 10년물 금리(20일 기준)는 전쟁 발발 이후 53.4bp(bp=0.01%포인트)나 치솟았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10년물 금리도 같은 기간 각각 39.4bp, 45.1bp 상승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국가부채비율이 GDP 대비 100%를 넘어서는 이들 국가가 에너지 보조금 지원 등 민생 대책을 쏟아낼 경우 재정에 상당한 압박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제사회에서의 외교적 영향력 또한 눈에 띄게 축소됐다. 최근 이란 종전 논의에서 유럽은 사실상 배제된 상황이다. 2006년부터 외교적 주도권을 쥐고 2015년 이란 핵 합의(JCPOA)를 견인했던 시기와 비교하면 유럽의 위상 추락이 확연하다는 평가다. 영국과 프랑스가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풀기 위해 개최한 40개국 정상회의도 뚜렷한 효과는 없었다. 스티븐 에버츠 유럽안보연구소(EUISS) 소장은 논평을 통해 “외교적으로 우리는 방관자 신세”라며 “휴전을 중재한 것은 파키스탄·튀르키예·사우디아라비아였을 뿐 유럽의 자리는 없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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