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자 크기 설정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영화가 호명한 지워진 사람들…제주 4·3의 아픔을 소환하다

[리뷰 : 영화 ‘내 이름은’]

절제된 연출로 시대적 상황 조명

입소문 타고 관객 10만명 돌파

입력 2026-04-21 18:17

지면 27면
영화 ‘내 이름은’의 스틸컷. 사진 제공=CJ CGV, 와이드 릴리즈
영화 ‘내 이름은’의 스틸컷. 사진 제공=CJ CGV, 와이드 릴리즈

영화 ‘내 이름은’은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는 ‘표식’인 이름을 통해 국가의 폭력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짓밟고, 세대를 넘어서도 반복되는지를 담담하게 추적한다. 1998년을 배경으로 9세 이전의 기억을 잃은 엄마 최정순(염혜란)과 18세 아들 이영옥(신우빈) 모자(母子)의 이야기가 주된 얼개다. 폭력이 난무하는 학교에서 여자 이름으로 살아가는 영옥. 이름을 바꾸고 싶다며 엄마에게 개명 신청서를 내밀지만 단칼에 거절당한다.

영화 ‘내 이름은’의 스틸컷. 사진 제공=CJ CGV, 와이드 릴리즈
영화 ‘내 이름은’의 스틸컷. 사진 제공=CJ CGV, 와이드 릴리즈

이 지점부터 정순의 봉인된 기억과 ‘영옥’이라는 이름을 통해 제주 4·3 사건, 베트남 전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근현대사가 투영된다. 봄만 되면 쓰러지는 정순의 지병, “아들 이름을 왜 여자 이름으로 지었냐”고 묻는 정신과의사(김규리)에게 “그냥 그 이름이 떠올랐다”고 말하는 정순. 이 모든 것이 폭력의 시대를 버텨온 고통의 은유였음이 드러나는 순간 관객들은 가슴이 먹먹해진다. 잊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의 고통이 우리 자신의 것으로 다가온 것이다.

영화 ‘내 이름은’의 스틸컷. 사진 제공=CJ CGV, 와이드 릴리즈
영화 ‘내 이름은’의 스틸컷. 사진 제공=CJ CGV, 와이드 릴리즈
영화 ‘내 이름은’의 스틸컷. 사진 제공=CJ CGV, 와이드 릴리즈
영화 ‘내 이름은’의 스틸컷. 사진 제공=CJ CGV, 와이드 릴리즈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영옥의 학교 생활은 폭력의 역사가 세대를 거듭해 다른 형태로 변주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수십 년이 지났어도 폭력은 약한 자들의 삶을 짓밟고, 기억해야 할 역사는 지워지고 있다. 서울에서 전학 온 ‘금수저’ 경태는 폭력을 조장하고, 심지어 반장 선거도 자신이 원하는 결과로 만든다. 폭력과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메커니즘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지워진 역사’를 다루는 방식은 더욱 상징적이다. “제주 4·3 사건을 왜 제대로 설명하지 않냐”고 묻는 학생에게 선생님은 “수능에도 안 나오는 역사”라며 답변을 거부한다. 이처럼 영화는 역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가르쳐지지 않는 방식’으로 배제되고 있음에 주목한다. 지워진 역사 속 고통을 감내했던 수많은 이름들이 영화를 통해 호명되는 순간, 감정은 북받친다.

영화 ‘내 이름은’의 스틸컷. 사진 제공=CJ CGV, 와이드 릴리즈
영화 ‘내 이름은’의 스틸컷. 사진 제공=CJ CGV, 와이드 릴리즈
영화 ‘내 이름은’의 스틸컷. 사진 제공=CJ CGV, 와이드 릴리즈
영화 ‘내 이름은’의 스틸컷. 사진 제공=CJ CGV, 와이드 릴리즈
영화 ‘내 이름은’의 스틸컷. 사진 제공=CJ CGV, 와이드 릴리즈
영화 ‘내 이름은’의 스틸컷. 사진 제공=CJ CGV, 와이드 릴리즈

정지영 감독의 절제된 연출과 염혜란 등 배우들의 연기는 비극적인 근현대사와 대조를 이루며 아픔을 극대화한다. 감정으로 밀어 넣기보다는 서사를 담백하게 쌓아 올리고, 설명 대신 침묵과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채워 넣는다. 역사의 아픔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영화적 절제는 그래서 더 큰 울림을 준다. 영화는 이달 15일 개봉 이후 관객 10만 명을 돌파하며 잔잔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광고삭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