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전환, 또 다른 ‘에너지 종속’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페트로-일렉트로]
수정 2026-04-22 17:04
입력 2026-04-22 06:30
2022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2026년 미국과 이란 전쟁. 최근 발생한 두 차례 지정학적 사건은 화석연료 의존이 언제든 에너지, 나아가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교훈을 안겼습니다. 자연스럽게 산유국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모두에게 공평한 태양과 바람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그런데 재생에너지가 과연 공평하기만 할까요?
중국이라는 ‘관문’, 지날 것인가 피할 것인가
미국과 이란 전쟁 시작된 지 두 달을 향해가는 현재, 에너지 수급 불안에 큰 타격을 입은 각국은 앞다퉈 재생에너지 확대에 착수했습니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설비와 전기차, 배터리 같은 관련 산업 전반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영국 전력 공급업체 옥토퍼스 에너지에 따르면 올 3월 영국 태양광 패널 판매량은 직전인 2월 대비 78% 급증했고요. 필리핀은 대규모 태양광·배터리 연계 발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하네요.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정부도 이달 화석연료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대전환을 추진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바 있죠.
그런데 잘 알려진 것처럼 재생에너지 공급망을 장악한 나라가 바로 중국이죠.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태양광 제품 생산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기차 생산에서도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상위 10대 풍력 터빈(육상+해상) 제조사 가운데 8개가 중국 업체였습니다. 즉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중국이라는 독점적 공급처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산유국은 중동 외에 다른 국가라도 있지만, 재생에너지는 중국 한 곳일 뿐인 것이죠.
가성비 뒤에 숨은 리스크
이쯤에서 두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첫 번째는 ‘재생에너지는 그래도 공급 중단이라는 위기는 없지 않나’ 하는 점일 텐데요. 이번 전쟁에서 다시 확인했듯 석유나 가스는 운송망 차단(호르무즈 해협 봉쇄), 공급 중단(카타르 LNG 생산 중단) 등 공급 분야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즉시 파장이 시작되죠. 하지만 중국이 재생에너지 ‘설비 공급망’을 쥐고 있는 것일 뿐, 태양과 바람의 공급을 좌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이 같은 측면에서 재생에너지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화석연료보다 유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중국산 말고 다른 국가가 만든 설비를 사든지, 국산화하면 되는 것 아닐까’ 인데요. 그렇다면 중국 공급망에 포함될 필요 없이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부분과 관련해 중국산은 매우 높은 가격 경쟁력을 갖고 있으며,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려는 국가들은 이 때문에 엄청난 딜레마를 겪고 있습니다.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중국 설비를 사용하면 메가와트시(MWh) 당 11%에서 최대 64%까지 더 저렴하게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합니다. 더구나 재생에너지를 대거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면, 한참 저렴한 중국산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기 쉽지 않겠죠. 영국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중국 태양광, 리튬이온 배터리 및 전기차 수출액은 총 2000억 달러(약 294조 3600억 원)에 달했으며, 이는 중국 수출 전체의 6%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올해 3월 기준 이 품목들의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70% 증가한 219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에너지 주권 위한 ‘안보 비용’ 지불 인정해야
한국을 비롯해 각국에서 주요 광물 공급에 대한 ‘탈(脫)중국’에 속도를 내고, 배터리 등을 재활용해 중국 광물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각종 정책적 노력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겠죠. 중국을 중심으로 짜여진 재생에너지 공급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입니다. 가령 인도 무역당국은 지난해 9월 중국산 태양전지·모듈에 최대 30%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도록 자국 정부에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공세에 대응해 중국과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가운데에서도 태양광 관련해서는 관세로 대응하면서 자국 관련 산업 육성에 나선 것이죠. <관련 연재 기사: 한국도 중국 태양광에 관세를 매길 수 있을까>
이 같은 이유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또 다른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렴한 중국산 의존도를 줄이면 초기 설비 투자 규모는 그만큼 늘어날 것이고요. 기술 자립화, 대체 공급망 수립 등에도 비용은 물론 시간 소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 안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현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중국 중심의 공급망 탈피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인식에도 이런 고민이 녹아 있는데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최근 동맹국들과 협의에서 핵심 광물에 ‘국가안보 프리미엄’을 지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가격 경쟁력보다 공급망 안정성을 우선시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는데요. 그리어 대표는 “비용 효율서만 따진 결과 지금과 같은 중국 의존 구조가 형성됐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에도 시사점을 주는 발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석유(Petro)에서 전기(Electro)까지. 에너지는 경제와 산업, 국제 정세와 기후변화 대응을 파악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기사 하단에 있는 [조양준의 페트로-일렉트로] 연재 구독을 누르시면 에너지로 이해하는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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