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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임 없이 신장 내어준 아내…혈액형 달라도 5년 생존율 94%

[이어진 숨, 피어난 삶]

■ 박순철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장

60대 말기콩팥병 환자 두 번째 신장이식

‘탈감작’ 요법 발전으로 혈액형 장벽 극복

생체 신장이식의 3분의 1 수준으로 보편화

서울성모병원, 혈액형 부적합 신장이식 500례

수정 2026-04-24 23:35

입력 2026-04-24 14:00

지면 19면
박순철(왼쪽)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이 최근 혈액형 부적합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김모 씨의 진료를 보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성모병원
박순철(왼쪽)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이 최근 혈액형 부적합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김모 씨의 진료를 보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성모병원

“신장(콩팥) 기능이 좋아져서인지,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졌어요. 빈혈(헤모글로빈) 수치도 정상이고 다른 검사 결과도 좋다는 말을 들으니 한결 마음이 놓입니다. ”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외래진료실에서 만난 김모(65)씨는 “체력이 더 올라오면 가족여행을 가보려 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혈액형 B형인 김씨는 올해 2월 AB형 부인의 신장을 기증받으며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 사상 500번째 혈액형 부적합 신장이식 수술의 주인공이 됐다. 기증자와 수혜자의 혈액형이 다를 뿐 아니라, 1989년 당시 28세의 나이로 첫 번째 신장 이식을 받은 후 두 번째 이식을 받게 된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아내에게 신장 이식을 받게 된 경위를 묻자, 김 씨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신장 한쪽을 내어줘서, 그저 미안하고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를 지켜보던 박순철 장기이식센터장(혈관이식외과 교수)이 “보통은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본인의 수술이 잘 되었는지를 묻게 마련인데, 첫마디가 ‘아내는 무사하느냐’는 것이었다”고 거들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몸보다 기증자인 아내의 안위를 먼저 챙기는 모습이 의료진에게도 무척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장기 이식 대기자에 비해 기증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2024년 말 기준 신장 이식 대기자는 3만 5707명, 평균 대기 기간은 2829일에 달했다. 나이 70을 바라보는 말기 콩팥병 환자가 뇌사자의 신장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형제에게서 이식받은 신장이 37년만에 기능을 다해 또다시 투석의 기로에 선 김 씨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건 아내였다. 자상했던 아버지가 신장 이식이 필요할 수 있다는 소식에 두 딸도 기꺼이 기증 의사를 밝혔으나, “당연히 남편에게 이식을 해줘야 하지 않느냐”는 어머니의 고집을 꺽지 못했다.

그런데 아내의 혈액형은 AB형으로 B형인 김씨와 맞지 않았다. 혈액형이 다른 사람의 신장을 이식하면 급성 거부 반응이 일어난다. 수혜자의 몸속에 있던 특정 항체가 이식 받은 장기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불가능한 영역이었지만, 이식 전 환자의 혈액에서 일치하지 않는 혈액형에 대한 항체를 제거하는 전처리 기법인 ‘탈감작(Desensitization) 요법’의 발전으로 가능해졌다. 간단한 과정은 아니다. 이식 수술을 시행하기 1~2주 전에 환자를 입원시킨 뒤 혈장 속에 존재하는 항ABO 항체를 직접 걸러내 제거하는 혈장교환술(Plasmapheresis)을 시행해 항체 역가를 떨어뜨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제거된 항체의 역할을 보완하고 면역 반응을 조절하기 위해 고용량의 면역글로불린 주사를 투여한다. 여기에 혈액암 치료에 쓰이는 항암제 성분인 리툭시맙을 투여하면 새로운 항체를 만들어내는 B림프구의 활동을 억제해 수술 후 거부반응을 예방할 수 있다. 리툭시맙이 체내 면역을 담당하는 B림프구 표면에 발현되는 CD20 단백질에 특이적으로 결합한다는 원리에 착안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의료진의 숙련도가 치료의 성패를 가른다. 개별 환자의 항체 역가를 실시간 읽고 최적의 면역 상태를 유지해야 거부반응과 감염이라는 양극단의 위험을 동시에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술 직후 1~2주 동안은 집중적인 추적 관찰과 세밀한 약물 조정이 필요하다. 수술을 망설이던 김 씨는 ”면역억제제가 발전하고 치료 노하우가 쌓이면서 혈액형 부적합 신장이식이 전체 생체이식의 3분의 1이 넘을 정도로 보편화됐다“는 박 센터장의 설명에 용기를 냈다. 기증자인 아내에게도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이식을 앞두고 체중을 2㎏ 줄이며 건강 관리에 매진한 결과, 고혈압과 당뇨 전단계 증상이 개선됐고 고지혈증 약을 제외한 모든 약을 끊었다. 아픈 남편을 위해 결심한 기증이 부부의 건강을 끌어올린 선순환이 된 셈이다.

박순철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이 혈액형 부적합 신장이식 수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성모병원
박순철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이 혈액형 부적합 신장이식 수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성모병원

서울성모병원은 명동성모병원 시절인 1969년 3월 국내 최초 신장 이식에 성공한 이후 고도 감작(혈액 내 항체가 있어 거부반응 위험이 높은 상태), 난치성 혈액질환자 등 고난도 수술을 선도해 왔다. 혈액형 부적합 신장 이식 500례는 2009년 5월 첫 성공 이후 16년 9개월 만의 성과다. 이를 통해 가족 중 혈액형이 일치하는 공여자가 없어 이식을 꿈꿀 수 없었던 수많은 말기 콩팥병 환자들이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됐다.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에 따르면 전체 생체 신장이식 중 혈액형 부적합 이식의 비율은 초기 약 10%에서 2026년 현재 35%까지 증가했다. 가장 많은 기증자-공여자 관계는 부부로, 절반이 넘었다. 이는 전체 생체 이식에서 부부 이식 비율(35%)보다 높은 수치다. 임상 경험이 쌓이면서 적응증이 확대돼 고도 감작과 혈액형 부적합이 동시에 존재한 고위험군은 87건(17%)에 달했다. 역대 최연장자인 73세 수혜자를 포함해 65세 이상 고령 환자가 전체의 7%(34건)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씨와 같은 재이식 사례는 52건, 세 번째 이식은 5건이었다. 이식 후 신장이 정상적으로 기능해 투석이나 재이식이 필요하지 않은 ‘이식 신장 생존율’은 1년 98%·5년 94%·10년 85%로, 혈액형이 일치하는 경우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박 센터장은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혈액형의 장벽이 낮아졌지만 장기 수급 불균형이 심각해 하염없이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많다”며 “우리 사회에 장기 기증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확산돼 더 많은 환자가 제2의 인생을 선물 받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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