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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투와 FOMO…100년 전 대폭락의 데자뷔[북스&]

■1929(앤드루 로스 소킨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美 대공황 부른 1929년 증시 대폭락

8년 간의 취재 통해 생생히 복원

빚으로 쌓은 1920년대 후반 호황

AI發 광풍 휩싸인 현재와 오버랩

확신 클수록 더 고통스럽게 추락

이번엔 다르다는 착각서 벗어나야

수정 2026-04-24 23:35

입력 2026-04-24 17:39

지면 17면
1929. 사진 제공=웅진지식하우스
1929. 사진 제공=웅진지식하우스

1920년대 미국 최대 은행인 내셔널 시티 은행의 찰스 미첼 회장은 평범한 미국인들이 주식에 투자할 길을 열어줬다. 개인투자자에게 공격적으로 돈을 빌려줘 당시 미국 사회에선 생소했던 ‘빚투(빚내서 투자)’를 대중화한 것이다. 투자자들은 자기 돈 10달러만 있으면 나머지는 빚을 내 100달러짜리 주식을 살 수 있게 됐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건설로 유명해진 투자자 존 J. 라스콥은 제너럴 모터스에서 재무담당 임원으로 일하던 1910년대 후반 자동차 할부 결제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인격과 인간성을 발달시키는 위대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부채를 짊어지는 사실 그 자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0년대 후반 주식 시장의 호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적은 비용으로도 주식 매입이 가능해지면서 미국인들은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꿨다. 하지만 이는 곧 악몽으로 바뀐다. 1929년 10월 주식시장은 역사상 최대 규모로 폭락했다. 추가 증거금 납입 요구를 감당하지 못한 고객들의 주식을 증권사가 강제로 청산하면서 매도세가 이어졌다. 뱅크런이 발생하며 1만 1000개의 은행이 문을 닫았고 약 1300만 명의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었다.

뉴욕타임스 저널리스트이자 CNBC 뉴스 프로그램 앵커인 저자는 신간 ‘1929’에서 1929년 주식 대폭락의 실체를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저자는 8년 동안 수집한 당시 월스트리트 거물들의 편지와 일기, 회의록, 법정 기록 등을 토대로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당시 상황을 현장감 있게 그려냈다. 미국에서 출간 직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올해의 책’으로 꼽았을 정도다.

저자는 1929년을 포함한 모든 주요 금융위기의 유일한 공통점은 ‘빚’이라고 지적한다. 1919년 제너럴 모터스가 신용으로 자동차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저축이 미덕이라는 미국의 오랜 통념이 깨졌다. 신용으로 상품을 사는 것은 주식시장도 마찬가지였다. 1920년대 초반 10억 달러 수준이던 신용대출 잔고는 1929년 약 60억 달러로 6배나 급증했다. 월스트리트의 금융 기관들은 시장은 계속 오를 것이라는 장밋빛 복음을 전하며 사람들이 계속 빚을 내도록 부추겼다.

“빚은 강력한 낙관주의의 산물이다. 만약 우리가 미래를 끝없이 펼쳐지는 기회와 풍요의 땅으로 믿는다면, 미래의 부를 조금 당겨서 오늘 쓰는 게 뭐가 문제인가? 그것이 바로 빚이 하는 일이다. …문제는 우리가 탐욕스러워져 너무 많이 가져오기 때문에 생겨난다.”

책은 증시 대폭락을 부른 월스트리트의 탐욕과 비리, 규제 당국의 무능도 낱낱이 파헤친다. 1929년 3월 주식시장의 투기 과열을 우려한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주식 신용 매수 억제를 권고하고 금리 인상을 논의하자 콜금리가 뛰며 시장에 불안감이 퍼졌다. 이때 미첼 회장은 내셔널 시티 은행이 증권사에 자금을 공급해 패닉을 끝내겠다고 선언했고 연준의 시도는 물거품이 됐다. 대폭락이 본격화된 10월 24일에 우량주를 대거 매수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던 리처드 휘트니 뉴욕증권거래소장 직무대행은 훗날 고객 돈과 거래소 기금을 횡령한 혐의로 감옥에 갔다.

책을 읽으면 1929년 거품이 터지기 직전과 지금의 상황이 오버랩된다. 코스피는 미국·이란 전쟁이라는 대형 악재에 아랑곳없이 매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상승장에 나만 낙오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개인투자자들의 빚투는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1920년대 미국 시장의 주도주가 라디오라는 신시장을 개척한 ‘RCA’였다면 현재는 인공지능(AI) 시대의 총아인 엔비디아와 반도체주가 대장주로 떠올랐다.

과연 현재의 강세장은 지속될 수 있을까. 저자는 1929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과거를 잊어버리는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비이성적 과열에 대한 치료제는 규제도 아니고 의심도 아니며, 바로 겸손이다. 즉 어떤 시스템도 완벽하지 않으며, 어떤 시장도 완전히 합리적이지 않고, 어떤 세계도 예외일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겸손이다. 우리가 가진 확신의 높이가 높을수록 우리는 더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추락한다.”

632쪽, 3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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