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시대…팩트보단 이야기로 풀자[북스&]
■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커트 그레이 지음, 김영사 펴냄)
‘위험성의 인식’이 분노 작용 기제
도덕 판단의 이분법이 갈등 증폭
팩트보다 경험 공유가 해법
입력 2026-04-24 17:41
요즘 세상은 성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인터넷 기사의 댓글창은 시궁창 수준이다. 기사 내용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상대 진영을 인격적으로 모욕한다. 생각이나 입장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은 위험 수준에 다다랐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화가 많아졌을까.
세계적인 도덕심리학자 커트 그레이는 신간 ‘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에서 분노가 오늘날에만 두드러진 현상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다만 지금은 디지털미디어의 발달로 그 양상이 훨씬 더 노골적이고 집단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상대에 대한 반대 견해나 비판은 ‘부도덕하다’는 판단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분노로 번진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의 입장을 반대하는 수준을 넘어 ‘미치광이’ ‘살인마’ ‘도둑’ 같은 낙인을 찍는 이유다.
저자는 이렇듯 편협한 도덕 판단의 뿌리를 ‘위험성의 인식’에서 찾는다. 인간은 특정 행동이 약자에게 얼마나 해를 끼치는지에 따라 분노하게끔 발달해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민 문제에서 진보 진영은 전쟁과 독재를 피해 온 아이들의 고통을 강조하며 수용을 주장한다. 반면 보수 진영은 일부 이민자 범죄로 인한 피해를 강조하며 반대한다. 낙태 역시 여성의 권리를 보느냐, 태아의 생명을 보느냐에 따라 분노의 방향이 갈린다.
결국 양쪽 모두 ‘위험’을 인식하고 이를 회피하려는 과정에서 분노라는 감정이 솟는다. 다만 그 위험이 누구에게, 얼마나 큰 피해로 작용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다를 뿐이다.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려는 인식 습관이 분노를 더 키운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사람을 피해자와 가해자로 이분화하는 식이다. 그러나 실제 인간은 그 경계에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가정폭력 가해자가 동시에 어린 시절 피해자였던 경우가 그 대표적 예다. 이처럼 도덕성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인식은 상대를 완전한 악인으로 규정하고, 토론과 설득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갈등은 더 격화되고 분노는 증폭된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은 ‘팩트’와 ‘데이터’에 기반한 토론이 해결책이라 믿는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단호히 부정한다. 이미 상대를 ‘위험한 존재’로 인식한 상태에서는 어떤 논리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대신 저자는 ‘이야기’와 ‘경험의 공유’를 제안한다. 서로 무엇을 위협으로 느끼는지 직접 듣고 나누는 것이다. 상대를 ‘평면적인 집단’이 아니라 ‘입체적인 개인’으로 인식할 때 비로소 이해의 가능성이 열린다. 여기에 상대의 의견을 요청하고, 상대 역시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위험을 회피하려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태도가 더해질 때 대화의 조건이 마련된다.
저자가 제안하는 해법이 현실에서 효과를 발휘할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분노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왜 이렇게 쉽게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그 인식의 전환이야말로 갈등을 완화하는 첫 걸음일지 모른다. 2만 4500원.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오늘의 연재
더 많은 연재오늘의 이슈
더 많은 이슈-
1,533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