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 투표율의 함정
입력 2026-04-24 18:02
“해외에서 선거 열기가 갈수록 식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6월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개헌 국민투표를 앞두고 동포 사회에서는 벌써부터 저조한 투표율을 전망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재외국민들에게 이번 선거는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2012년 선거권이 부여된 이래 치러지는 역대 9번째 선거이자 헌정 사상 첫 개헌 국민투표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역만리 타국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재외국민들이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사전 등록 신청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접근성도 문제다. 동마다 투표소를 설치하는 국내와 다르게 해외에서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각국 영사관이나 대사관 등 공관으로 투표소 설치를 제한하고 있다. 지난 대선을 기준으로 재외선거 투표소는 전 세계 118개국, 220여 곳에 설치됐다. 일례로 대한민국의 면적의 7배에 달하는 미국 텍사스주는 단 3곳, 대한민국 면적의 77배에 달하는 호주는 투표소가 5곳에 불과하다. 선거 때마다 투표를 위해 국경을 넘어 수천 ㎞를 이동했다거나 생업마저 포기하고 투표소를 찾았다는 재외동포들의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이유다.
이런 현실이 외면받는 데는 재외선거에만 적용되는 투표율 산정 기준도 한몫한다. 국내에서 치러지는 선거는 전체 유권자를 기준으로 하지만 재외선거 투표율은 자발적으로 신청한 사전 등록자를 기준으로 한다. 지난 대선 투표율은 역대 재외선거 투표율 최고치인 79.5%를 기록했지만 전체 유권자를 기준으로 하면 10.4%에 그친다. 투표율이 실제보다 높게 보이는 통계적 착시를 불러온 결과다. 거꾸로 뒤집어보면 투표 의지는 내국인(투표율 79.4%)보다 높지만 제도적·물리적 한계로 투표권 행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의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현장 투표만 가능한 한국의 재외국민 투표율은 일본과 함께 최하위권이다.
우편 투표 제도 도입이 해결책으로 제시됐지만 여야 이견으로 10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이민 2·3세로 이어지는 재외국민들의 선거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재외국민의 참정권 보장 확대는 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뿌리를 지키는 시작점이다. 정치권에서는 선거 결과에 대한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기 전에 재외국민 투표율 증가가 통계에 가려진 재외동포 유권자 220만이라는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 더 이상 이역만리 타국에서 생업을 제쳐놓고 투표소를 찾았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들려오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오늘의 연재
더 많은 연재오늘의 이슈
더 많은 이슈-
558개
-
813개
-
2,11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