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간호사의 절규…“극한 비상 의료사태…국제사회 도움 절실”
■‘국경없는의사회’ 사파 무니르 블레이크 인터뷰
오랜 분쟁·보건의료 취약 구조 속 이스라엘 맹폭 이어져
경고 없이 10분 만 민간인 주거지 등 100회 이상 폭격도
다리 잃고 복부 파편 박힌 사망자 가족 비명 귓가 울려
병원·이동진료소에 중상자 신음소리·가족 절규 가득
47일간 1만명 이상 사상자…의료 물자·인력 바닥 한계
의료진도 초인적 버티기, 국제사회 인도적 지원 필요
“의료 지원 이뤄지면 살릴 수 있는 환자 더 많아질 것”
수정 2026-04-27 10:35
입력 2026-04-27 07:30
“레바논은 장기간의 경제 위기와 인프라 파괴, 치안 불안에 시달렸는데 지난 3월 2일 사전 경고도 없이 이스라엘의 폭격까지 시작돼 극한의 의료 비상 사태에 처했습니다. 제발 민간인들이 보호받고 필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도와줬으면 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레바논 출신 간호사인 사파 무니르 블레이크는 26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경우에서 봤듯이 레바논에서도 보건·의료 시스템이 한계에 달해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 2주간에 걸쳐 국경없는의사회를 통해 어렵게 이뤄졌다. 그는 2012년부터 국경없는의사회 소속으로 레바논과 쿠웨이트에서 신생아 집중치료, 학교·지역사회 보건, 의료 서비스 관리, 1차 보건의료 조율 활동을 펴왔는데 현재 레바논의 구호 현장에서 간호사이자 의료 코디네이터 지원 업무를 맡고 있다.
미국심장협회가 인증한 기본소생술·전문심장소생술 강사로도 활동하는 그는 여러 의료 구호 활동을 해왔지만 이번 사태는 특히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레바논에서 오랜 극심한 분쟁과 경제·사회·보건의료의 취약성이 이어져 온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광범위한 폭격으로 인해 필수 의료 서비스조차 제대로 제공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전에도 취약계층 의료 접근성의 중심축 역할을 해온 공공병원과 정부 1차 보건센터조차 극심한 재정난과 인력·의료 물자 부족에 시달려 왔는데 이번 전쟁으로 메가톤급 충격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의료 물자와 인력, 발전기 연료 등이 턱없이 부족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이동 제한, 치안 불안, 인프라 파괴, 구급차 부족으로 환자 이송도 지연되고 있다. 재정 위기로 보건부 산하의 공공 필수 의료 서비스 체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그는 “외상 환자가 조금만 늘어나거나 피난으로 추가 수요가 생기거나 의료물품 공급망에 약간의 차질만 생겨도 순식간에 의료 한계를 넘어서기 마련”이라며 “의료진조차 치안 불안과 피난, 정신적 압박감,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돼 심각한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실제 블레이크 간호사가 지난 4월 8일 라피크 하리리 대학병원을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응급의학 의사들과 함께 정기 방문했을 때 쓴 ‘현장 기록’을 보면 현지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사전 경고도 없이 단 10분 만에 민간인 주거지 등 100회 이상 이스라엘군의 폭격이 잇따르며 갑자기 연기와 먼지가 병원을 뒤덮었고 구급차 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며 “머리를 심각하게 다치고 몸에 유리 파편·금속·잔해물이 박힌 환자들이 실려 왔다. 의식이 없는 경우도 많았고 도착 즉시 숨진 이들도 있었다. 응급실은 환자가 고통에 겨워 내는 신음과 부모·형제의 울부짖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고 절규했다. 그러면서 두 다리를 잃고 복부에 파편이 박힌 환자에게 지혈·봉합을 했지만 끝내 숨지고 말았는데 그 가족의 비명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고 당시의 참상을 전했다. 그러면서 지칠대로 지친 병원 의료진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을 때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등 여러 의료진이 속속 병원에 도착했으나 물자는 빠르게 바닥나고 위급한 환자도 너무 많아 불가향력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상당수 위독한 환자들이 계속 밀려들며 고군분투하던 몇 시간이 마치 몇 년처럼 느껴졌다”며 “폭격 이후 4시간쯤 지났을 때 한꺼번에 20여 대의 구급차가 쏟아졌는데 50여 명의 환자가 모두 숨을 거둔 뒤였다. 의료진이 탈진할 정도로 헌신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며 울먹였다.
블레이크 간호사는 레바논 보건부 통계를 인용해 이스라엘의 폭격이 시작된 3월 2일부터 이달 17일까지 47일 동안 상당수 민간인을 포함해 2454명이 숨지고 7658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병원과 진료소들이 의약품 등 물자와 인력의 심각한 부족, 간헐적인 전력 공급, 파괴된 이송 체계로 큰 애로를 겪어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15곳의 병원이 폭격을 당해 이 중 6곳이 문을 닫았고 응급의료 과정에서 129건이나 피격돼 의료진 등이 100명이나 숨지고 233명이 다쳤다고 몸서리를 쳤다. 그는 “국경없는의사회 등 국제 구호단체들은 3월 2일부터 현지 여러 병원의 응급실에 상주하며 환자 치료와 물품 지원에 나서고 20개 이동 진료소에서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으나 역부족”이라며 “아동과 만성질환자 등 의료 취약계층이 피격 충격과 불안정한 치안, 반복적인 피난 사태, 누적된 트라우마 속에 상태가 위중해진 뒤에야 의료시설을 찾곤 한다”며 눈물을 훔쳤다.
현지 지역사회가 겪는 심리적 충격도 매우 크고 의료진도 불안하기 짝이 없는 극한의 환경에서 장시간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그는 “공공병원과 정부 1차 보건센터조차 오랜 재정난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전쟁으로 설상가상의 위기를 맞았다”며 “레바논에서 조금만 더 필수 서비스 보장과 의료 접근이 이뤄진다면 살릴 수 있는 환자가 너무 많다”며 국제사회의 지원을 재차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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