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반도체굴기 위협적…더 센 인센티브 미루면 추월당할 것”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반도체융합공학과 교수
韓기업 반도체 슈퍼사이클 취해 안주하면 위기 자초
中 극자외선 노광장비 등 반도체 기술자립에 총력전
우리도 ‘포스트HBM’ 위한 반도체 산학연지원 필요
R&D 분야 주52시간 예외 위한 반도체 특구도 절실
수정 2026-04-27 23:46
입력 2026-04-27 18:23
홍병문
논설위원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며 세계 반도체 업계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AI가 전 산업에 확대 적용됨에 따라 고대역폭메모리(HBM)는 물론 서버용 D램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의 깜짝 실적 행진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반도체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인 만큼 호황에 취해 다음 세대를 대비하지 않으면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작지 않다. 무엇보다 미중 패권 전쟁 속에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기술 약진)가 매우 위협적이라 우리 기업들의 미래 대비와 정부의 더 센 인센티브가 지체될 경우 중국을 따돌리기는커녕 추월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짙어지고 있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반도체융합공학과 교수는 2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무서운 속도로 반도체 굴기의 성과를 내고 있는 중국의 도약은 한국 반도체 기업을 위협하는 수준에 올라섰다”며 “중국처럼 반도체 분야 등 첨단산업에 대한 파격적이고 구조적인 인센티브가 없다면 우리 반도체 산업의 미래 경쟁력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추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반도체 호황에 취해 안주하면 엔비디아와 같은 AI 반도체 기업의 하청 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호황을 이끄는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나.
△과거에는 메모리 치킨 게임 등 시장 상황과 반도체 기업 간 물량 경쟁에 따라 상승과 하락이 이어졌다. 지금은 이란 전쟁,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따른 원자재 공급망 변화 등 지정학적 불확실성 요인이 겹쳐 예측이 쉽지 않다. 다만 이번 슈퍼사이클의 경우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이 고객들로부터 1년 이상의 롱텀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2년 정도는 호황 사이클이 유지될 것으로 본다.
-반도체 수요가 줄면 고객들이 계약 물량을 취소할 수 있지 않나.
△과거에는 시장 상황이 악화하면 고객들이 주문을 취소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지금은 HBM 수요가 강해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고객사가 주문을 취소할 경우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하는 의무가 따르는 계약을 하고 있다. 장기적 위험을 피하기 위해 고객사들과 공동투자 개념으로 계약을 맺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공장 증설 투자를 할 때 고객사가 상당한 비중으로 참여하는 조인트벤처 형식으로 계약을 진행하기도 한다. 투자에 참여한 고객사가 주문 물량을 끝까지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과잉생산과 매몰 비용으로 인한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
-당분간 반도체 시장의 위험 요인은 크지 않다는 얘기인가.
△중국의 현재 반도체 기술 수준과 반도체 굴기를 위한 정부의 노력을 보면 우리 기업이 절대 안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가장 주목해야 할 움직임은 미국의 이른바 ‘차보즈(卡脖子·목 조르기)’식 핵심 기술 규제 리스크에서 벗어나려는 중국의 노력이다. 중국 정부와 반도체 업계는 미국 제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극복 대상 기술 목록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10년 전 30여 개 목표 가운데 달성 기술이 4~5개 정도였는데 지금은 달성 못 한 기술을 찾기가 더 쉬울 정도다.
-중국이 미국의 차보즈 제재에서 벗어난 것인가.
△최근 중국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화웨이는 AI 가속기 신제품 ‘아틀라스 350’을 공개하며 “미국의 규제 리스크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났다”고 선언했다. 미국과 한국·대만 등 해외 공급망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개발한 부품으로 100% 중국산 AI 가속기에 성공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의 차보즈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미국의 차보즈 규제에서 벗어나는 화룡점정은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업체 ASML이 보유한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대신할 중국산 장비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 중국은 EUV 노광 장비 기술을 국산화하는 데는 10여 년의 기간이 더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이 글로벌 반도체 업체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 10여 년이 더 걸린다는 뜻인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중국이 EUV 노광 장비 대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반도체 제조 장비를 만드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EUV 이전 세대 노광 장비인 심자외선(DUV)이다. 최근 중국의 반도체 행사에 가보면 DUV 노광 장비를 자체 기술로 생산해 반도체 제조 현장에서 사용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은 노광 장비의 주요 광원을 국산화하거나 이 빛을 감지하는 특정 소재를 개발하면서 하나둘씩 첨단 반도체 기술의 축적물을 쌓아가고 있다. 이런 추세면 ASML의 EUV 노광 장비를 대체할 장비를 만드는 중국 기업이 10년 내로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중국 견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최근 미국의 대중 압박을 보면 반도체뿐 아니라 AI 분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트럼프 2기 핵심 정책 중 하나는 AI 전략이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으로 새 AI 프로젝트인 제네시스 프로그램(Genesis Mission)을 발표했다. 중국과 패권 전쟁에서 AI를 중심축에 놓고 이를 산업과 안보에까지 적용해 혁신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한국은 반도체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데 중국은 대조적이다.
△한국은 반도체 강국을 이끈 주력 인재들이 대부분 1970~1990학번 세대다. 이들은 머지않아 대부분 은퇴하는데 이 공백을 메우지 못하면 첨단 반도체 기술의 업그레이드가 힘들어질 수 있다. 반면 중국은 젊은 인재들이 반도체로 몰리면서 반도체 굴기를 앞당기는 주력군이 되고 있다. 우한에 있는 한 공대의 경우 반도체 관련 전공 교수가 160명에 달하고 대학원생은 2000여 명에 가깝다. 반도체 분야 등 첨단산업에 대한 중국보다 더 세고 확실한 구조적 인센티브가 없다면 우리나라가 미래 경쟁력에서 중국에 추월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있다.
-구글이 AI 메모리 사용량을 압축하는 ‘터보퀀트’를 공개하면서 메모리 수요 둔화 우려가 나온다.
△터보퀀트는 메모리 절감보다는 처리 속도 향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오히려 터보퀀트 기술이 AI 활용을 확대해 반도체 시장 성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에너지 효율이 오르면 오히려 수요가 증가해 전체 에너지 사용량은 늘어난다는 ‘제본스의 역설’처럼 좋아진 성능은 전체 메모리 생태계를 오히려 확장시킬 수 있다.
-AI 사용이 활발해지면 고객 맞춤형 메모리 수요가 더 커지는 것 아닌가.
△당분간은 반도체 시장에서 HBM이 대세가 되겠지만 이후에는 추론 과정의 맥락을 강화하는 새로운 개념의 메모리 장치인 ICMS(Inference Context Memory Storage)가 주목받을 수 있다. 추론이 대세인 AI 산업구조에서 엔비디아는 맞춤형 연산장치로 ICMS가 들어간 메모리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만약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런 요구를 맞춰주지 못하면 엔비디아는 스스로 메모리반도체 설계를 대신하겠다고 나설 것이다. 그 순간 삼성전자나 하이닉스는 메모리 셀만 납품하는 메모리 하청 업체로 전락하는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지금의 반도체 호황이 위기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인가.
△이대로 안주하면 포스트 HBM 시대에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엔비디아는 물론 구글 등 빅테크는 자체 AI 가속기 설계에 나서며 성능 최적화를 위해 맞춤형 HBM을 요청하면서 반도체 업체들의 체질 개선을 주문할 것이다. 결국 HBM 산업은 주문형 위탁 생산인 파운드리와 비슷한 구조가 되는데 파운드리 분야를 갖춘 삼성전자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지만 SK하이닉스에는 엄청난 도전 과제가 될 것이다.
-우리 반도체 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중국의 도약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에 대한 지원에 나서야 한다. 우선 과거 반도체 산업 초기처럼 산학연 공동 프로젝트와 같은 지원 전략을 보다 정교하게 구체화해야 한다. 올 초 반도체특별법이 통과되기는 했지만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예외 조항’은 끝내 제외됐다. 반도체 산업은 지금 전 세계적으로 경쟁이 격심해지는 상황에서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밤낮 없이 근무해야 하는 ‘크런치 모드(신제품 출시 등을 앞두고 집중적으로 근무하는 것)’ 시기가 있다. 주 52시간을 완전히 폐지하지는 않더라도 이런 집중 근무의 길은 제도적으로 열어줘야 한다. 이런 규제가 유연하게 적용되는 특구를 만드는 방안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법적인 측면에서 반도체 클러스터는 일반 산업단지와 큰 차별성이 없다. 반도체 특구를 법적으로 보장하기 힘들다면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라도 조금 더 확실한 조례 등을 통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
◆ He is…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신일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화학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을 지냈으며 성균관대 화학공학부와 반도체융합공학과 교수를 겸하고 있다. 2022년 저서 ‘반도체 삼국지’를 통해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의 이면을 분석해 큰 주목을 받았다. 최근 펴낸 후속작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에서 중국 반도체 굴기의 현재와 미래를 분석하고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생존 전략을 제시했다. 2023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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