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로 엑시트’ 산유국의 석유 카르텔 탈퇴가 준 신호
수정 2026-04-30 11:06
입력 2026-04-30 07:30
-세 줄 요약-
△60년 가까이 OPEC의 핵심 멤버이자 생산량 3위인 UAE가 생산 자율권 확보와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고유가를 유지해 거대 프로젝트 자금을 마련하려는 사우디와 달리, UAE는 석유 시대 종말 전 자산을 빠르게 현금화하여 경제 구조를 전환하려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번 탈퇴는 미·이란 전쟁 등 지정학적 위기와 맞물려 원유 핵심 공급처로서 중동의 역할 변화를 나타내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이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파장은 어디까지 이어질까요. 이번 사태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이어 중동 석유 카르텔, 석유수출국기구(OPEC) 핵심 멤버 이탈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 역시 불러왔습니다. 수십 년 동안 에너지 시장을 좌우해온 중동 ‘페트로 파워’가 정말 저물기 시작한 것일까요?
60년 몸담은 ‘핵심 멤버’가 빠져나갔다
현지 시간 4월 28일, 아랍에미리트(UAE)는 깜짝 놀랄만한 발표를 하나 내놓습니다. 올해 5월 1일부로 OPEC에서 탈퇴를 하겠다는 것인데요. 1967년 OPEC에 가입한 이후(OPEC 창설은 1960년) 무려 60년 가까이 핵심 멤버였던 UAE가 ‘이제 그만 우리 헤어지자’고 선언을 한 것이죠. 물론 카타르(2019년), 에콰도르(2020년), 앙골라(2024년) 등 이전에도 OPEC에서 빠져나간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이 310만 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948만 배럴), 이라크(370만 배럴)에 이어 3위인 UAE 이탈은 무게가 다릅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UAE의 여유 생산 능력은 하루 60만 배럴로 사우디 다음으로 크다”고 분석했는데요. 여유 생산 능력이 클수록 생산량을 조절해 원유 가격을 높였다 낮췄다 할 수 있는 여력이 커진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사실 UAE는 이전부터 계속 OPEC에 불만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정확히는 원유 생산량을 통제하고, 이를 통해 국제유가를 쥐락펴락하는 카르텔로서 ‘철옹성’을 유지하려는 사우디의 전략에 반감을 나타냈다는 것인데요. 아니, OPEC이 시장 지배력을 계속 유지하면 UAE 입장에서도 좋은 거 아닌가? 그러나 UAE 대답은 ‘노(No)’라는 겁니다. UAE는 증산을 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 310~340만 배럴 수준인 원유 생산 능력을 500만 배럴로 늘리기 위한 증설 작업을 마친 상태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산유국이자 중동 부자 나라이기도 한 사우디와 UAE 모두 석유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하고 있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지로 지난해 5월 중동을 찾았던 것, 기억하실 겁니다. 사우디는 이 순방을 계기로 엔비디아의 최신 블랙웰 칩을 총 3만 5000개를 구매했고, UAE 역시 동일한 규모인 3만 5000개 사들였습니다. 사우디와 UAE가 석유 이후의 먹거리로 얼마나 ‘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다 써버리기 위한 증산? 산유국의 ‘포스트 오일’ 생존법
그런데 같이 탈 석유를 진행하고 있지만, 접근법은 서로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사우디는 비전 2030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죠. 사업비만 총 약 5000억 달러(약 739조 5000억 원)에 달하는 거대 도시 건설 사업인 ‘네옴 시티’ 역시 비전 2030 일환으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막대한 돈이 필요한 만큼 상당한 기간 동안 많은 석유 수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UAE의 경우 무역과 금융, 관광 등 비(非) 석유 사업을 육성하고 있는데요. 이런 차이 때문인지 현재로서는 UAE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석유 부문 비중이 거의 80%에 달할 정도로 높아져 50% 중반대인 사우디를 앞선 상황입니다.
미국 라이스대 베이커연구소의 크리스티안 코츠 울리크센 중동 담당 연구원은 “UAE는 향후 세계 석유 수요가 감소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좌초자산의 위험’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는데요. 석유 시대의 종말이 오기 전 가지고 있는 석유를 서둘러 현금화해 경제를 탈바꿈하려 한다는 것이죠. 원자재 연구 기업 아거스 미디어의 바샤르 엘 할라비 두바이 선임 애널리스트는 “사우디가 향후 100년 동안 석유 시장을 유지하는 것으로 목표로 하는 반면, UAE는 그런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짚었습니다. 이 같은 인식 차이가 OPEC 주도국과 핵심 멤버 간 의견 충돌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UAE는 2021년에도 한 차례 OPEC 탈퇴를 고민했었다고 하네요.
점점 쌓여오던 갈등은 미·이란 전쟁으로 폭발해버리고 맙니다. UAE는 전쟁 기간 동안 이란으로부터 총 2000기 이상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받았습니다. 세계 최고층 빌딩인 부르즈할리파와 금융지구 등 역시 피격됐고요. 또한 지난달 원유 생산량이 전쟁 전인 2월 대비 40% 감소할 정도로 에너지 설비에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그럼에도 걸프국들이 이란 대응에 소극적으로 나서자 중동 체제와의 결별을 결심한 것입니다.
지정학적 충돌과 에너지 전환의 교차점
설명이 길어졌는데요. 결국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이번 일로 OPEC이 과연 흔들릴 것인가 하는 점이겠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OPEC 자체를 무너뜨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습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다른 국가들의 연쇄 탈퇴를 촉발하지 않는 한 UAE 탈퇴가 OPEC 존폐의 위기까지 불러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 기사를 내놨습니다. UAE 같은 핵심 멤버 이탈은 처음이지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OPEC이 또 상황에 적응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사사건건 생산량 통제에 이견을 내어 온 UAE가 없으면 오히려 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UAE 탈퇴가 미·이란 전쟁의 연장선에서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중동 에너지 생산 차질 등에 따라 장기적으로 탈 중동 움직임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중동에서 큰 에너지 지정학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오히려 중동 영향력이 감소했던 역사적 흐름과도 일치합니다. 50%를 웃돌던 OPEC 점유율은 1·2차 오일쇼크를 거치며 30%대로 감소했습니다. 현재는 러시아가 주도하는 비 OPEC 산유국 연대체 OPEC+까지 다 합해도 점유율이 50%가 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관련 연재 기사: 꼬이는 호르무즈 해법, 중동 ‘페트로 파워’가 흔들린다> 특히 셰일 혁명으로 미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생긴 상황이고요.
무엇보다 UAE가 OPEC 탈퇴를 결정한 그 이유, 석유 시대의 끝에 대한 대비라는 점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화석연료 쓰임이 2050년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와 동시에 에너지 전환의 물결이 거센 점 역시 사실입니다. 미·이란 전쟁에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에 대한 주목도가 더 커지기도 했죠. 오일쇼크 때와는 달리 지금은 재생에너지가 매우 비중있는 대안으로 성장한 상황은 화석연료와 OPEC의 영향력을 뿌리부터 흔들 수 있습니다. 영국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에 따르면 지난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석탄 발전량을 106년 만에 처음으로 역전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UAE 탈퇴는 산유국의 석유 카르텔 이탈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석유(Petro)에서 전기(Electro)까지. 에너지는 경제와 산업, 국제 정세와 기후변화 대응을 파악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기사 하단에 있는 [조양준의 페트로-일렉트로] 연재 구독을 누르시면 에너지로 이해하는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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