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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 옌징의 ‘소금 우물’

류현미 (사)식문화세계교류협회 회장

수정 2026-05-04 14:40

입력 2026-04-30 18:17

류현미

류현미

(사)식문화세계교류협회 회장

한 여인이 차마고도의 소금밭에서 소금을 거두고 있다. 류현미
한 여인이 차마고도의 소금밭에서 소금을 거두고 있다. 류현미

길은 바람이 먼저 만든다. 그리고 인간은 그 길 위에 삶을 얹는다. 차마고도(茶馬古道)는 그렇게 태어난 길이다. 차마고도는 차와 말이 오가던 교역로라는 설명만으로는 온전히 다 설명할 수 없다. 그곳에는 생존의 무게가 흐르고, 시간이 켜켜이 쌓이며, 인간의 존재가 스스로를 증명하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나는 그 길 위에서 옌징(鹽井)을 만났다. 티베트 동부와 윈난(云南)의 경계, 란창강(瀾滄江. 메콩강의 상류이다) 깊은 협곡을 따라 자리 잡은 작은 마을. ‘소금 우물’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곳은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은 방식으로 소금을 만들어오고 있는 곳이다.

세상 끝에 염전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옌징이다. 해발 2,400미터의 높은 고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공기, 그리고 끝없이 스치는 바람. 그 속에서 사람들은 오늘도 강변 절벽에 염수를 퍼올리는 우물을 파고, 나무관을 통해 계단식 논처럼 층층이 쌓인 소금밭으로 끌어올리고, 태양과 시간을 기다린다.

옌징의 소금은 끓이지 않는다. 햇볕이 말리고, 바람이 굳히고, 시간이 완성한다. 이 단순한 방식은 오히려 깊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음식을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자연이 완성하도록 돕고 있는가.

음식은 소금에서 시작된다

인류의 식탁은 소금에서 시작되었다. 소금은 단순한 짠맛을 내는 간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었다. 음식이 썩지 않도록 지키고, 재료의 맛을 끌어내며, 몸의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요소이다. 그래서 소금은 언제나 음식의 중심에 있었지만, 동시에 가장 뒤에 서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드러나지 않지만, 없으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이 바로 소금이다.

옌징에서 만들어진 소금은 다시 길을 따라 이동한다. 고산의 마을로, 유목민의 식탁으로, 그리고 이름 없는 사람들의 하루로. 그 길 위에서 음식은 단순한 섭취를 넘어선다. 그것은 삶을 이어가는 방식이자, 공동체를 지탱하는 언어가 된다. 그 소금이 우리를 일깨워준다. 우리가 먹는 한 끼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공존하는 삶이 녹아 있다는 것을.

한 여인이 차마고도의 소금밭에서 소금을 거두고 있다. 류현미
한 여인이 차마고도의 소금밭에서 소금을 거두고 있다. 류현미

손이 기억하는 맛

옌징의 염전 위에는 수많은 손이 있다. 검게 그을린 손, 갈라진 손, 그리고 묵묵히 반복되는 손. 그 손은 단순히 소금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하루를 쌓고, 시간을 견디고, 삶을 이어 붙이고 있다. 염수를 퍼 올리고, 소금밭 위에 붓고, 다시 걷어내는 단순한 반복. 그러나 그 반복 속에는 한두 마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천년의 이야기가 스며 있다.

소금을 만드는 일은 노동이면서 동시에 기도다. 말없이 이어지는 동작 속에서 사람은 점점 경건해지고, 마침내 삶의 본질과 마주하게 된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언가를 이루는 일이 아니라 무언가를 끝까지 이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옌징의 소금은 다르다. 그것은 그냥 짠맛이 아니라 시간의 맛이고, 노동의 땀이 스며든 삶의 맛이다.

우리는 종종 음식에서 ‘강한 맛’을 찾는다. 자극적이고, 빠르고,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맛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옌징의 소금은 그 반대의 길에 서 있다. 그것은 기다림으로 완성된 맛, 절제로 다듬어진 맛, 그리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맛이다.

좋은 음식은 재료를 이기지 않는다. 오히려 재료가 가진 본래의 맛과 향을 조용히 끌어낸다. 소금은 가장 적게 들어가지만, 가장 깊게 작용하는 재료다. 많이 넣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다. 적절하게 넣을 때 비로소 최고의 맛이 완성된다. 그 한 줌의 균형이 음식의 품격을 만든다. 옌징의 소금은 음식의 깊이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음식은 기억이 되고, 소금은 그 기억을 붙잡는다

사람은 결국 기억을 먹고 산다. 어린 시절의 밥상, 누군가가 정성껏 차려준 한 끼, 힘들고 지친 날에 위로가 되어주었던 따뜻한 국밥 한 그릇. 그 기억으로 힘을 얻고 다시 살아간다.

그 기억의 중심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바로 소금이다. 음식에 스며들면 보이지는 않지만 없으면 결코 생존할 수가 없다. 옌징의 소금이 ‘하얀 황금’이라 불리는 이유다.

차마고도의 소금 산지 모습. 류현미
차마고도의 소금 산지 모습. 류현미

소금은 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옌징의 소금은 말없이 우리에게 알려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드러나지 않는 곳에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음식은 단순한 섭취가 아니라 기억이 되고, 소금은 그 기억을 오래 붙잡아 두는 힘이 된다.

길 위에서, 삶을 다시 묻다

차마고도의 길 위에서 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음식인가, 아니면 결과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속도인가, 아니면 사람인가.”

옌징의 사람들은 빠르지 않다. 그러나 흔들리지도 않는다. 그들은 알고 있다. 삶은 쌓는 것이 아니라 이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오늘을 살고, 오늘과 같은 방식으로 내일을 맞이하는 것. 그 단순한 반복이 결국 삶을 지탱한다.

옌징의 소금은 쉽게 녹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한 결정체가 아니라 삶의 응축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음식도,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눈에 보이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 성실한 하루, 조용한 반복,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지고지순한 마음. 그것들이 쌓여 결국 한 사람의 ‘맛’을 만든다.

차마고도는 그래서 길이 아니라 질문이다. 옌징은 장소가 아니라 하나의 답이다. 그리고 그 답은 언제나 단순하다. 오늘 당신의 식탁에는 어떤 소금이 놓여 있는가. 그리고 그 소금으로 당신은 어떤 삶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화두를 던지며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류현미 식문화세계교류협회장
류현미 식문화세계교류협회장

·성신여대 교육학과 석사, 명지대 식품양생학과 석사

·현 (사)식문화세계교류협회 회장

·현 중국 탕산해운직업대학교 객원교수

·현 중소기업국제관세무역자문센터협동조합(ICTC) 중국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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