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정책 믿고 투자한 기업은 허탈하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
수정 2026-05-04 05:00
입력 2026-05-04 05:00
우리나라는 자연이 준 에너지 자원이 사실상 거의 없는 나라다. 문재인 정부는 이에 ‘자연 상태에 존재하지 않는 수소 에너지만큼은 우리가 앞서 나가겠다’는 당찬 포부를 내걸었고, 많은 기업이 그 깃발을 믿고 과감히 투자에 나섰다. 실제로 수소 발전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국가 중 하나였다.
그런데 지금 그 깃발이 소리 없이 내려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수소 발전 전반에 사실상 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수소 발전에 대해 우려스러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연료전지 분야에서는 올해부터 입찰시장이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둘째, 수소 혼소 발전의 연료를 국내 조달 그린 수소로만 한정해 사업자의 시장 진입이 어렵다. 재생에너지만으로 그린수소를 국내에서 연중 안정적으로 대규모 조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셋째, 수소 전소 발전은 기술 및 조달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신규 발전사업 허가가 실질적으로 중단된 상태다. 넷째, 무탄소 연료인 암모니아 혼소 발전 역시 석탄발전소 수명 연장에 기여한다는 이유로 시장 개발 자체가 가로막혀 있다. 수소 발전의 네 가지 축이 동시에 흔들리는 셈이다.
정부를 믿고 투자한 기업은 허탈한 상황에 놓였다. SK에코플랜트는 경북 구미, 두산퓨얼셀은 전북 군산 새만금 산업단지에 연료전지 공장을 완공해 가동 중이고, 두산에너빌리티는 정부 지원을 받아 중형급 수소전소 가스터빈 연소기 개발과 양산 시스템 구축에 성공했다. 그런데 정부는 그 공장이 돌아가야 할 시장의 문을 닫아버렸다. 공장을 짓고 손님을 기다리는데 시장 자체가 열리지 않는 셈이다. 수소 및 암모니아를 활용한 무탄소 발전을 준비했던 기기 제작사, 수소 및 암모니아 공급사, 에너지 사업자들 역시 “앞으로는 정부 정책을 믿으면 안 되겠다”는 깊은 허탈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물론 에너지 정책과 정치를 완전히 분리하기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려운 일이다. 새 정부마다 에너지 정책의 큰 흐름이 바뀌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니, 지난 정책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은 모호한 신호를 거두고 명확한 결단을 내려야 할 갈림길에 서 있다. 수소 발전을 포기할 것이라면, 그 뜻을 분명하고 신속하게 밝혀야 한다. 그래야 이미 투자한 기업들이 자산을 정리하고 추가 손실을 막을 수 있다. 반대로 수소 발전의 길을 계속 걷겠다면, 정부는 마중물 또는 버팀목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신산업 생태계 초기에 보조금과 제도적 뒷받침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 때문이다. 투자한 기업도, 투자를 검토하는 기업도 지금 정부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어중간한 침묵은 가장 나쁜 신호다. 희망의 선례는 이미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초기 정부 지원을 발판 삼아 가스터빈 분야에 뛰어들어 마침내 미국에 총 12기를 수출하는 결실을 보았다. 현재 수소 터빈과 연소기 개발을 병행 중으로, 국내 실증이 이뤄지면 머지않아 세계 시장에서도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가 수소 발전이라는 씨앗에 물을 주면 우리 기업들은 세계 시장으로 뻗어 나가며 수소 발전 플랜트·기술 수출의 주역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지금 이 씨앗을 거두어들인다면 훗날 남의 나라가 선점한 시장에 뒤늦게 뛰어드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물을 줄지 아니면 거두어들일지에 대한 정부의 현명한 답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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