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자 크기 설정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묻지마 범죄’ 매년 40건…“개념 정교화가 예방 출발점”

[강남역 사건 10년 흘렀지만…]

가해-피해자 모르는 사례 반복

기동순찰·무기형 도입 검토 등

선별 관리 방안에도 대응 난항

美·英선 ‘증오·분노’ 등 세분화

정신질환자 의료데이터 축적 등

공통 범행 중심 기준 재정립 절실

수정 2026-05-07 08:35

입력 2026-05-06 17:51

지면 25면

광주광역시에서 일면식도 없는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여고생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이른바 ‘묻지 마 범죄’로 불리는 이상 동기 범죄가 매년 40건씩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에서 20대 여성이 모르는 남성에게 살해된 후 10년이 지났지만 유사 범죄가 끊이지 않으면서 단순 대응을 넘어 구조적 원인 분석과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경찰청에 따르면 이상 동기 범죄는 최근 3년간 매년 40건 안팎으로 발생하고 있다. 경찰은 2023년부터 피의자와 피해자 간 관련성이 없고 범행 동기가 불분명하며 수법이 잔혹한 사건을 이상 동기 범죄로 분류해 통계를 관리하고 있다. 이번 광주 사건에서도 피해 고교생들은 피의자 장 모(24) 씨가 범행을 준비한 장소를 우연히 지나가다 공격 대상이 된 것으로 파악됐다.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이른바 묻지 마 범죄는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다. 당시 가해자 김성민은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처음 본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뒤 “평소 여성에게 무시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이후 2023년 서울 관악구 신림역과 경기 성남시 서현역에서 잇따라 유사 범죄가 발생하면서 시민 불안이 확산됐고 정부 차원의 대응도 본격화됐다.

대표적으로 경찰은 2024년 현장 순찰을 강화하고 강력 범죄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기동순찰대를 출범시켰다. 법무부는 묻지마식 강력 범죄에 대해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전남 순천시와 서울 강북구 미아역 인근에서 유사 사건이 잇따르자 법무부는 지난해 9월 보호관찰 대상자 가운데 이상 동기 범죄 위험군을 선별해 관리하는 방안도 추가로 내놓았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4주기를 맞은 2020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피해자에 대한 추모 메시지가 붙어있다. 뉴스1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4주기를 맞은 2020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피해자에 대한 추모 메시지가 붙어있다. 뉴스1

그러나 이상 동기 범죄의 특성상 범행 징후를 사전에 포착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광주 사건과 관련해 경찰은 “프로파일러 면담과 포렌식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다”면서도 “피의자 진술 외에는 동기를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피의자 장 씨가 “사는 게 재미없어 자살을 고민하다가 범행을 결심했다”고 진술한 점 역시 개인의 내면적 요인이 범행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제도적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우선 이상 동기 범죄의 개념 자체를 정교하게 다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재처럼 동기 불분명성과 잔혹성 등을 포괄적으로 묶는 방식으로는 범죄 유형별 특성을 분석하기 어렵고 맞춤형 대응 전략을 설계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를 ‘거리의 악마 살인 사건’으로 개념화해 사람들이 밀집한 공간에서 명확한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흉기를 사용하는 경우로 좁게 정의한다. 미국과 영국 역시 유사 사건을 ‘증오·분노 범죄’ 등으로 세분화해 관리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회에 대한 불만 표출, 분노의 대상 전이 등 공통된 범행 메커니즘을 중심으로 기준을 재정립해야 사례 축적과 비교 분석을 통해 실질적인 예방 전략을 도출할 수 있다”고 짚었다.

일부 고위험군의 선제적인 관리 필요성도 꾸준히 제기된다.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정신 질환을 앓는 소년 범죄자의 의료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위험 신호를 장기적으로 추적할 필요가 있다”며 “출소 전 정신건강 상태 평가를 의무화하는 등 재범 방지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정신 질환과 범죄를 단순 연결하는 접근은 낙인 효과를 낳을 수 있어 정밀한 기준 설정과 인권 보호 장치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한편 광주 광산경찰서는 이날 살인 등의 혐의로 장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 실질 심사)은 7일에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은 장 씨에 대한 신병 확보를 마무리하는 대로 신상 공개 절차도 진행할 예정이다. 신상공개위원회는 7일 또는 8일에 개최될 예정이며 얼굴과 이름·나이 공개 여부가 결정된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광고삭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