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자 크기 설정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에너지 절약, 고통이 아닌 모두의 이익이다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

수정 2026-05-06 23:51

입력 2026-05-06 18:07

지면 30면

“TV는 밤 9시에 끄고 전등은 하나라도 더 끕시다.”

1973년 유가가 1년 만에 4배나 폭등한 ‘오일쇼크’의 한복판에서 온 국민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전기를 아꼈다. 그 당시 명동·충무로 등 서울 시내 번화가의 네온사인은 일제히 꺼졌고 학교는 유례없이 긴 겨울방학에 들어갔다. 이 치열한 노력 덕분에 대한민국은 에너지 위기를 극복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때와 꼭 닮은 위기 앞에 다시 섰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지속되면서 일평균 2000만 배럴의 원유가 오가는 호르무즈해협이 두 달 넘게 꽉 막혀버린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사상 최대 규모인 4억 배럴의 비축유를 긴급 방출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위기가 고조되면서 주요국들은 단순히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를 넘어 해외 의존도를 낮추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메이드 인 유럽’을 내걸고 에너지 안보를 중심으로 정책을 재편하고, 일본 역시 녹색대전환(GX)을 통해 화석연료 수입량을 줄이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도 4월 ‘에너지 대전환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외부 충격에 취약한 에너지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 중이다.

50여 년 전과 비슷한 에너지 위기를 맞았지만 이를 극복하는 방식은 진화했다. 강제로 전기 사용을 줄이며 불편을 감내해야 했던 과거와 달라졌다.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면 경제적 혜택을 줘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한국전력이 3월 개설한 에너지 절약 통합 플랫폼 ‘슬기로운 전기생활’이 그 변화의 시작이다. 다양한 에너지 절약 방법과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던 39종의 지원 제도를 한곳에 모아 누구나 합리적인 에너지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주택용 에너지캐시백’은 전기를 아낄수록 요금 할인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무조건 아끼던 과거와 달리 절약이 곧 ‘경제적 이득’이 되는 똑똑한 소비 경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산업 현장의 에너지 절약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전기를 많이 쓰는 대형 시설은 ‘최대전력관리장치’ 설치 시 한전을 통해 비용 부담을 낮추고 전력량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소상공인과 뿌리기업은 한전의 지원을 받아 낡은 기기를 고효율 기기로 교체하며 에너지 체질 개선에 동참하고 있다.

전력회사가 나서서 고객에게 전기를 덜 쓰게 돕도록 하다니 얼핏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손해 보는 장사 같다. 하지만 전체를 놓고 보면 그렇지 않다. 이렇게 모인 수요 절감은 수조 원짜리 발전소와 거대한 송전탑을 새로 짓지 않아도 되는 이익으로 돌아온다. 이에 더해 연료 수입량을 줄이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할 수 있어 국가적으로도 이득이다.

무조건 불을 끄고 견뎌야 했던 과거의 절약이 고통과 인내였다면, 지금의 절약은 에너지를 합리적으로 소비하며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스마트한 혁신’으로 성장했다. 반세기 전 불편을 기꺼이 감수했던 헌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한 차원 진화한 방식으로 지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차례이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광고삭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