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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왜 실험실이 되는가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석좌교수(난양공대 산업처장 겸 변환경제센터장)

RIE2030 톺아보기 ⑩

입력 2026-05-07 14:49

조남준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석좌교수

도시를 교통·에너지·물·환경·보건·데이터가 동시에 연결되어 작동하는 ‘실험실’로 표현한 AI 이미지.
도시를 교통·에너지·물·환경·보건·데이터가 동시에 연결되어 작동하는 ‘실험실’로 표현한 AI 이미지.

도시 혁신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스마트시티를 떠올린다. 센서를 달고, 데이터를 모으고, 교통과 에너지를 효율화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2030년 국가 전략인 RIE2030(Research, Innovation and Enterprise)에서 도시는 그런 기술 적용의 대상이 아니다.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실험실이다.

왜 도시는 실험실이 되는가.그 이유는 단순하다. 도시만큼 복잡한 시스템은 없기 때문이다.

도시는 주거 공간이면서 동시에 생산 공간이고, 소비 공간이며, 에너지와 자원이 집중되는 장소다. 교통, 에너지, 헬스, 환경, 안전, 행정이 동시에 작동한다. 하나의 기술이나 정책이 이 모든 요소와 맞물려 반응하는 공간이 바로 도시다. 싱가포르는 이 복잡성을 문제로 보지 않고 실험의 조건으로 본다.

예를 들어 교통 정책 하나만 보더라도 그 영향은 단순하지 않다. 혼잡 통행료를 조정하면 교통 흐름뿐 아니라 상업 활동, 물류 비용, 시민 이동 패턴, 에너지 사용까지 동시에 변화한다. 도시에서는 하나의 정책이 여러 시스템을 동시에 건드린다. 이 복합 반응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도시다.

RIE2030에서 도시의 핵심 역할은 기술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전환이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검증하는 것이다. 에너지 관리 기술이 실제로 비용 구조를 바꾸는지, 교통 데이터가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지, 환경 성과가 투자와 신뢰로 이어지는지를 도시라는 현실 공간에서 확인한다.

이 접근에서 중요한 점은 도시 실험이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RIE2030은 도시를 프로젝트 단위로 쪼개지 않는다. 대신 장기적으로 축적되는 데이터와 경험을 자산으로 다룬다. 실패한 실험도 자산이다. 무엇이 작동하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정 에너지 정책이 예상보다 효과가 낮았다면, 그 실패는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다. 어떤 조건에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지를 보여주는 데이터다. 이 데이터는 다음 정책 설계에서 중요한 기준이 된다. 도시 실험은 성공보다 학습을 축적하는 과정이다.

도시가 실험실이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규모다. 국가는 너무 크고, 기업은 너무 작다. 도시는 정책 실험이 가능할 만큼 충분히 크면서도 통제가 가능할 만큼 충분히 작다. 싱가포르는 이 중간 규모의 장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예를 들어 전국 단위로 새로운 교통 정책을 도입하는 것은 위험이 크다. 반면 특정 도시 구역에서 먼저 실험을 진행하면 정책 효과를 검증하고 조정할 수 있다. 기업 단위 실험으로는 얻을 수 없는 사회적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여기서 변환경제의 논리가 다시 등장한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는 단순한 운영 정보가 아니다. 교통 흐름, 에너지 사용, 환경 성과, 시민 행동 데이터는 모두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다. 디지털을 통해 측정되고 축적되며 비교 가능해질 때 도시 자체가 하나의 자산 포트폴리오가 된다.

예를 들어 에너지 사용 데이터를 생각해 보자. 건물별 에너지 소비가 실시간으로 측정되고 비교 가능해지면, 효율이 낮은 건물은 개선 압력을 받게 되고 효율이 높은 건물은 투자 가치가 높아진다. 같은 도시 인프라라도 데이터가 연결되는 순간 투자 대상이 되는 자산으로 바뀐다.

이 때문에 RIE2030에서 도시와 디지털 ESG는 긴밀하게 연결된다. 도시의 ESG 성과는 선언이 아니라 데이터로 관리된다. 탄소 배출, 에너지 효율, 환경 질, 사회적 성과가 수치로 축적되면 정책은 감각이 아니라 증거에 기반해 조정된다. 도시 운영이 곧 경제 전략이 되는 순간이다.

싱가포르의 물 관리 시스템도 좋은 사례다. 물 사용량, 재활용률, 에너지 소비 데이터가 통합적으로 관리되면서 물 정책은 단순한 자원 관리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일부가 된다. 물 기술은 해외로 수출되고, 도시 운영 경험은 글로벌 표준으로 확장된다. 도시에서 축적된 데이터가 국가 자산으로 전환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접근은 스마트시티 담론과 분명히 다르다. 스마트시티가 기술을 얼마나 도입했는지를 묻는다면, RIE2030은 그 기술이 어떤 구조 변화를 만들었는지를 묻는다. 효율이 아니라 전환이 기준이다.

한국의 도시를 떠올려 보자. 우리는 도시 문제를 해결 대상으로 본다. 교통이 문제고, 주거가 문제고, 환경이 문제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시선은 다르다. 도시는 문제의 집합이 아니라 해답을 검증하는 공간이다.

예를 들어 교통 혼잡을 줄이기 위해 도로를 확장하는 것은 문제 해결 접근이다. 그러나 교통 데이터를 활용해 이동 패턴을 바꾸고, 대중교통과 공유 모빌리티를 연결하며, 정책 효과를 지속적으로 측정하는 것은 실험 접근이다. 전자는 해결에 머물고, 후자는 구조를 바꾼다.

RIE2030은 도시를 통해 묻는다. 이 정책은 실제로 작동하는가. 이 기술은 비용을 줄이는가. 이 데이터는 자산이 되는가. 도시가 실험실이 되는 이유는 이 질문들에 가장 정직하게 답해 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다음 회에서는 이 모든 도메인을 관통하는 마지막 축, 디지털을 살펴보려 한다. RIE2030에서 디지털은 하나의 분야가 아니라 모든 전환을 연결하는 공통 언어이기 때문이다.

조남준의 CROSS ECONOMY(변환경제)
조남준의 CROSS ECONOMY(변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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