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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약으로 버티며 출근했는데…되돌아온 건 ‘무능력자’ 낙인

[사회로 돌아온 마음병 청구서]

<2>기업 생산성 갉아먹는 마음병

성과압박·승진·직장 내 괴롭힘에

항우울제 처방건 5년來 최다인데

산재 승인율은 오히려 15%P 하락

프레젠티즘으로 경쟁력 악화 우려

수정 2026-05-07 21:56

입력 2026-05-07 18:21

산업재해 근로자의 날인 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추모 팻말과 붉은 꽃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재해 근로자의 날인 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추모 팻말과 붉은 꽃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최 모 씨는 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지난해부터 우울감과 불안 증상이 심해져 최근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 씨는 업무 집중력이 떨어지고 불안 증상이 잦아지자 큰마음을 먹고 항우울제 복용을 시작했다.

하지만 복용 이후 두통과 울렁거림·어지럼증이 나타나면서 오히려 업무 수행 능력은 떨어졌다. 약을 먹기 전에는 가까스로 업무를 이어갈 수 있었지만 복용 이후에는 회사에서 집중하지 못하거나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아졌다. 최 씨는 뒤늦게 약물 중단을 시도했지만 후유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 씨는 “우울감을 치료하려고 약을 먹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회사에서 집중하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 등 이른바 ‘마음병’을 앓는 직장인이 늘어나면서 기업 생산성에도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직장 내 경쟁과 성과 압박, 장시간 노동, 괴롭힘 등으로 정신건강에 이상을 호소하는 청년층이 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직무상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 정신질병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한 직장인 중 산재를 인정받은 사례는 절반 정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승인율이 5년째 하락하면서 치료와 휴식 기회를 놓친 근로자들이 업무 효율 저하나 휴직·퇴직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여기에 치료 과정에서 약물 부작용이나 중단 증상까지 겪으면서 업무 집중력이 떨어지는 사례도 이어지면서 마음병이 개인의 건강 문제를 넘어 기업의 업무 효율과 인력 운용, 나아가 국가 생산성까지 갉아먹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7일 서울경제신문이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신질병으로 산재를 신청한 근로자는 754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승인을 받은 인원은 421명으로 승인율은 55.8%에 그쳤다. 정신질병 산재 승인율은 2021년 70.5%에서 2022년 64.5%, 2023년 65.7%, 2024년 58.1%를 기록하는 등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승인율 하락의 배경에는 정신질병의 업무 관련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산재로 인정받으려면 근로자의 질병과 업무 환경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는 직무 스트레스뿐 아니라 개인적 요인, 가정 문제, 기존 질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이나 과도한 업무 부담이 질병 악화에 영향을 미쳤더라도 업무 외 요인이 함께 고려되면 불승인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특히 정신질병 특성상 한 가지 원인만으로 발병하거나 악화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 때문에 업무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증상이 악화돼도 산재 신청 자체를 망설이는 근로자도 많다. 실제 질병 산재 신청 건수에서 정신질병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45% 수준에 그쳤다. 충분한 치료와 휴식을 보장받지 못한 근로자는 출근을 하더라도 업무 집중도와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증상이 심해지면 휴직이나 퇴직으로 이어져 기업 입장에서도 인력 공백과 생산성 저하 부담이 커진다.

직장인들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는 극심한 취업난이나 직장에서의 승진·평가 경쟁 등이 꼽힌다. 경기도 용인에 거주하는 유 모(31) 씨는 “대학 시절 인턴을 두 차례 하고 학회 활동도 여러 개 했지만 취업이 쉽지 않았다”며 “2년 가까이 준비해 들어간 회사에서 폭언과 욕설을 겪은 뒤 퇴사했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항우울제를 처방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항우울제 처방 건수는 2440만 4000건으로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0년 1785만 건과 비교하면 5년 만에 36.7% 증가한 수치다.

특히 주요 경제활동 세대인 2030세대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30대의 항우울제 처방 건수는 312만 7000건으로 2020년 179만 건보다 74.7% 늘었다. 20대 역시 같은 기간 189만 9000건에서 296만 1000건으로 55.9% 증가했다. 지난해 항우울제 처방 상위 20개 주상병 가운데서는 ‘우울 에피소드’가 704만 7000건으로 가장 많았고 ‘기타 불안장애’가 375만 5000건으로 뒤를 이었다.

문제는 마음병이 단순히 개인의 치료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겪는 직장인이 늘면 결근뿐 아니라 출근은 했지만 업무 효율이 크게 떨어지는 ‘프레젠티즘’ 문제가 커질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눈에 보이는 병가나 퇴사보다 더 넓은 범위의 생산성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다. 특히 청년층은 기업의 미래 인력 기반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정신건강 악화는 중장기 경쟁력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재준 의원은 “우울과 불안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해 온 기업 문화와 제도 개선을 미뤄온 정부 모두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근로자는 정당한 보호를 받고 기업도 예측 가능한 기준 속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산재 인정 체계를 합리적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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