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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우울·불안 산재 승인율 55.8%… 직장인 마음병 보호망 ‘흔들’

[사회로 돌아온 마음병 청구서]

<2>기업 생산성 갉아먹는 마음병

5년 만에 70.5% 대비 15%p ↓

질병산재서 차지하는 비율 1%대

정신질환-업무연관성 입증 어려워

방치된 마음병에 생산성도 흔들

성과압박·승진·직장 내 괴롭힘에

항우울제 처방건수 5년來 최다로

수정 2026-05-08 16:39

입력 2026-05-08 07:00

지면 2면

직무상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 정신질병으로 산업재해(산재)를 신청한 직장인 가운데 실제 산재 인정받은 사례는 절반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승인율은 5년째 내리막이다. 치료와 휴식 기회를 놓친 근로자가 업무 효율 저하나 휴직·퇴직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신질병이 개인의 건강 문제를 넘어 기업 생산성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7일 서울경제신문이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고용노동부(고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신질병으로 산재를 신청한 근로자는 754명이었다. 이 중 승인을 받은 인원은 421명으로 승인율은 55.8%에 머물렀다. 정신질병 산재 승인율은 2021년 70.5%에서 2022년 64.5%, 2023년 65.7%, 2024년 58.1%로 꾸준히 낮아졌다.

승인율 하락의 배경에는 업무 관련성 입증의 어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산재로 인정받으려면 근로자의 질병과 업무 환경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는 직무 스트레스뿐 아니라 개인적 요인, 가정 문제, 기존 질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과도한 업무 부담이 질병 악화에 영향을 미쳤더라도 업무 외 요인이 함께 고려되면 불승인되는 사례가 적지 않은 이유다.

정신질병 특성상 한 가지 원인만으로 발병하거나 악화되는 경우는 드물다. 업무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증상이 심해져도 산재 신청 자체를 망설이는 근로자가 많은 배경이다. 실제 지난해 질병 산재 신청 건수에서 정신질병이 차지하는 비중은 1.45%에 그쳤다.

문제는 기업 차원의 손실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충분한 치료와 휴식을 보장받지 못한 근로자는 출근을 하더라도 업무 집중도와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증상이 심해지면 휴직이나 퇴직으로 번지고, 기업 입장에서도 인력 공백과 생산성 저하 부담을 떠안게 된다.

우재준 의원은 “우울과 불안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해 온 기업 문화와 제도 개선을 미뤄온 정부 모두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근로자는 정당한 보호를 받고 기업도 예측 가능한 기준 속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산재 인정 체계를 합리적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성형 AI를 통해 제작된 이미지
생성형 AI를 통해 제작된 이미지

◇ 약으로 버티며 출근했는데…되돌아온 건 ‘무능력자’ 낙인

우울증과 불안장애 등 이른바 ‘마음병’을 앓는 직장인이 빠르게 늘면서 기업 생산성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개인의 건강 문제를 넘어 기업의 업무 효율과 인력 운용, 나아가 국가 생산성까지 갉아먹는 요인으로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최 모 씨는 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지난해부터 우울감과 불안 증상이 심해져 최근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업무 집중력이 떨어지고 불안 증상이 잦아지자 큰마음을 먹고 항우울제 복용을 시작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복용 이후 두통과 울렁거림·어지럼증이 나타나면서 오히려 업무 수행 능력이 떨어졌다. 약을 먹기 전에는 가까스로 업무를 이어갔지만 복용 이후에는 회사에서 집중하지 못하거나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아졌다. 뒤늦게 약물 중단을 시도했지만 후유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 씨는 “우울감을 치료하려고 약을 먹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회사에서 집중하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직장 내 경쟁과 성과 압박, 장시간 노동, 괴롭힘 등으로 정신건강 이상을 호소하는 청년층이 늘고 있다. 치료 과정에서 약물 부작용이나 중단 증상까지 겹치면서 업무 집중력이 더 떨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극심한 취업난뿐 아니라 입사 이후에도 이어지는 승진·평가 경쟁은 2030세대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키는 배경으로 꼽힌다.

경기도 용인에 거주하는 유 모(31) 씨는 “대학 시절 인턴을 두 차례 하고 학회 활동도 여러 개 했지만 취업이 쉽지 않았다”며 “2년 가까이 준비해 들어간 회사에서 폭언과 욕설을 겪은 뒤 퇴사했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항우울제 처방은 이미 가파른 증가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항우울제 처방 건수는 2440만 4000건으로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0년 1785만 건과 비교하면 5년 만에 36.7% 늘었다. 특히 주요 경제활동 세대인 2030세대에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30대 처방 건수는 312만 7000건으로 2020년 179만 건 대비 74.7% 급증했다. 20대도 같은 기간 189만 9000건에서 296만 1000건으로 55.9% 늘었다. 지난해 처방 상위 20개 주상병 중에서는 ‘우울 에피소드’가 704만 7000건으로 가장 많았고 ‘기타 불안장애’가 375만 5000건으로 뒤를 이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마음병이 단순한 개인 치료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겪는 직장인이 늘면 결근은 물론 ‘프리젠티즘’이 커진다. 출근은 했지만 업무 효율이 크게 떨어지는 현상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눈에 보이는 병가나 퇴사보다 더 넓은 범위의 생산성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다. 청년층은 기업의 미래 인력 기반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정신건강 악화는 중장기 경쟁력에도 부담이다.

마음병은 노동시장 이탈과도 맞물린다. 한국은행이 올해 1월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취업 경험이 있는 ‘쉬었음’ 청년은 2019년 36만 명에서 지난해 47만 7000명으로 늘었다. 최근에는 비자발적 사유로 일자리를 그만두는 청년이 늘어나는 추세다. 일자리를 그만둔 이유로는 ‘직장 불만’이 39.5%로 가장 많았다. 여기에는 동료 또는 상사와의 불화, 직장 내 괴롭힘 등이 포함된다. ‘건강상 이유’도 13%를 차지했다.

사회적 비용은 고립·은둔 청년 문제로도 이어진다. 보건복지부는 2023년 국내 고립·은둔 청년을 54만 명으로 추산했다. 이들의 경제활동 포기 등에 따른 사회적 손실은 연간 약 7조 원으로 분석됐다. 구직 활동 포기에 따른 손실이 6조 7000억 원, 고립 생활로 인한 건강 악화 등에 투입되는 복지 비용이 2000억 원 수준이다.

한국은행은 “‘쉬었음’ 청년층 증가는 단기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도 노동공급을 줄여 경제 전체의 성장 잠재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취업 기간이 1년이면 계속 쉴 가능성은 3.3%에 그치지만 공백이 5년을 넘으면 20%까지 치솟는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의 나약함이나 일시적 부적응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직장 내 괴롭힘을 줄이고 정신건강 치료와 업무 복귀를 병행할 수 있는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기업의 생산성 손실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 ESG 보고서 필수요소 된 심리복지…기업들 앞다퉈 “상담받으세요”

‘마음의 병’으로 퇴사하거나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직장인이 늘면서 기업들 사이에서 임직원 심리 관리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조직 경쟁력의 변수가 된 것이다.

7일 서울경제신문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자동차·네이버·카카오 등 5개 기업의 연결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의 2025년 복리후생비는 2024년 대비 평균 10.9% 늘었다. SK하이닉스의 상승 폭이 가장 컸다. 관련 비용이 2345억 원에서 2791억 원으로 19% 뛰었다. 5개 기업 모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보고서에 심리 상담 등 ‘마음건강 관리’ 프로그램 운영 내용을 담았다.

제조업 대기업들은 전용 상담 공간 확충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국내 30개소의 사내 심리상담센터와 마음건강 클리닉, 해외 제조사업장·연구소 29개소의 사내 심리상담센터를 각각 운영 중이다. 마음건강증진 프로그램과 경력단계별 마음건강 교육도 병행한다.

SK하이닉스는 2011년부터 사내 심리상담센터 ‘마음산책’을 지속 운영해왔다. 한국심리학회 자격증을 보유한 상담사들이 배치돼 있다. 현대자동차는 ‘오은영 아카데미’와 협업해 자녀 양육, 부부 관계, 가족 관계 등을 주제로 1대1 상담과 검사를 제공한다. 2023년 도입한 가족챙김 프로그램은 심리적 고충 경감을 위한 실질적 솔루션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기업 문화가 상대적으로 유연한 정보기술(IT) 업계도 심리 지원에 적극적이다. 네이버는 연계된 전문 상담 기관 5곳을 통해 심리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연 10회까지는 상담 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이후에는 80%를 지원한다. 사내 심리상담센터도 주 5일 운영하며 연 1회 심리 건강검진까지 제공한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임직원에게는 횟수 무제한 무료 상담과 우선 예약권을 부여한다.

카카오는 명상·상담 전용 공간 ‘톡테라스’를 두고 있다. 심리 상담 전문가와 대인 관계, 업무, 진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자가 진단을 통해 심리적 어려움을 종합 진단하고 개인 맞춤형 종합·개별요인·심층보고서를 담은 마음건강안내서도 제공한다.

문제는 이런 ‘심리 복지’가 기업 규모에 따라 크게 갈린다는 점이다. 국내 기업의 97%가 영세사업자인 만큼 상당수 직장인이 심리 상담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전문가들은 일터 내 심리 지원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경영진의 전향적 태도와 제도적 뒷받침이 맞물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확대되고는 있지만 실제 일터의 복지 수준은 결국 고용주 의지에 좌우되는 구조”라며 “신체 검진이 노동 생산성을 높인다는 인식 속에 기업 문화로 안착했듯 정신적 건강 역시 조직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는 공감대가 중소 업체들 사이에서도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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