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상징서 돌봄 존재로 ‘시대의 아버지상’
■아버지의 역사 (어거스틴 세지윅 지음, 지식의날개 펴냄)
누구에게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부성은 모성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다. 역사적으로도 여성이 ‘어머니’로서 자격과 역할에 관심을 받았다면 남성은 그냥 ‘남성’으로 인식됐다. 마치 자녀에게 아버지라는 존재가 필요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가정과 사회, 국가에서 혈통과 상속, 사회 질서를 떠받치는 개념이자 존재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역사학자 어거스틴 세지윅은 저서 ‘아버지의 역사-사랑과 권력의 5천 년’에서 고대 가부장제부터 최근 ‘남성성 위기’ 논의에 이르기까지 부성의 기원과 변화를 추적한다. 가족 구성원을 사랑과 희생으로 돌보는 부양자인 동시에 가부장제 속에서 가족을 억압하는 권력자로서 이중적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책에 따르면 초기 모계 중심 사회에서는 부성의 개념이 뚜렷하지 않았다. 이후 사회 구조가 바뀌면서 아버지의 역할이 커졌고, 가정과 사회에서 영향력도 확대됐다는 설명이다. 부성이 자리 잡는 과정이 남성 중심 질서를 강화하는 흐름과 맞물려 있었다는 해석도 소개된다.
현대에 들어선 이런 양상은 다소 옅어졌다. 남성의 양육 참여가 늘어나면서 아버지의 역할 역시 달라지고 있어서다. 전쟁과 산업화, 과학기술 발전, 가족 구조 변화가 겹치면서 돌봄과 책임, 교감을 중시하는 새로운 아버지상이 부각되고 있다. 여성의 사회 활동 확대도 이런 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자는 역사 속 철학자, 군주, 정치인, 과학자, 예술가 등 여러 인물들을 통해 이러한 흐름을 포착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저서 ‘국가’에서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사적 가정을 해체하고 공동양육을 제안하며 아버지를 본성이 아닌 제도의 문제로 전환시켰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버지의 권위를 정당화하며 가정을 정치 질서의 기초로 보았다.
영국 국왕 헨리 8세는 혼인과 출산을 국가 권력의 핵심으로 삼고 부성을 정치의 중심에 놓았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아버지’라는 개념을 정치적 언어로 활용하면서도 사적 책임은 선택적으로 회피했다. 산업화 이후 전통적 가부장의 경제적 기반이 붕괴되는 현실 속에서 랠프 윌도 에머슨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생계를 위한 돈과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는 새로운 부성의 양상을 보여주었다.
가수 밥 딜런의 사례도 눈길을 끈다. 그의 모습은 기존 권위적인 ‘아버지’에서 정서적으로 교류하는 ‘아빠’로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가부장제와 전통적 가정 규범을 거부하는 급진적 태도를 취하면서도 그 이면에 부성과 가족에 대한 인습적 관념에 향수를 지닌 채 살아가는 모순적인 아버지상을 드러낸다.
저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서구를 중심으로 부성의 변화를 살펴보지만, 이러한 흐름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고 본다. 한국 역시 가부장적 전통을 겪으며 이제 아버지의 존재와 역할이 달라졌다는 점에서 예외가 아닐 듯하다. 2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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