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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K-푸드 인기 소회

권대영 한식인문학자(전 한국식품연구원장)

입력 2026-05-08 17:49

권대영

권대영

한식인문학자

남미에서 K-푸드 인기를 묘사한 AI 이미지.
남미에서 K-푸드 인기를 묘사한 AI 이미지.

내 인생에 버킷리스트가 여러 개 있었다. 인류학적으로 이집트 문명을 기반으로, 크레타(미케네) 문명, 그리스 문명, 로마 문명을 찾아 여행과 함께 인류의 삶의 아름다움을 탐방하고 싶었고, 다른 하나는 중국, 아메리카, 유럽 등 세계의 절경을 찾아가면서 지구별의 아름다움을 찾아 헤매고 싶었다. 버킷리스트 하나를 지우기 위해 잉카 문명와 파타고니아 자연의 남미 여행을 떠났다.

작년에 이집트 문명여행을 마치고 올해 정말 큰마음 먹고 남미 여행을 다녀왔다. 지구 반대편 남미 여행의 결심은 쉽지 않은 여행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먼 곳을 적어도 36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갈 때 견뎌낼 수 있을까? 쿠스코 등 고산병을 이겨낼 수 있을까? 파타고니아의 피츠로이, 토레스델파이네 등 유명한 트레킹을 감당해낼 체력이 될까? 등 걱정이 많았다. 페루의 고대 문명과 파타고니아의 자연, 근대 도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이 모든 염려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안데스산맥과 긴 태평양 해안선을 끼고 있는 남미는 사실 먹을 거리가 풍부한 나라이어서 그들 나름의 고유의 전통 음식이 많다. 페루의 열을 가하지 않은 해산물 회, 세비체(Ceviche), 볼리비아의 전통 양고기 갈비인 꼬르데로(Cordero), 칠레의 물속에서 열을 가한 해산물 탕인 파릴라마리나(Parila Marina), 아르헨티나의 말과 소를 직접 불에 굽지 않고 복사열로 익힌 아사도(Asado), 브라질의 닭, 양, 소고기를 쇠꼬챙이에 꽂아 직접 구워 먹는 슈하스코(Churrasco) 등 대표 음식을 두루 먹어보았다.

이들 음식을 먹을 때 매번 꼭 김치가 생각났다. 김치가 밥을 먹을 때 질리지 않고 맛있게 먹는 과정에서 탄생한 음식임을 견주어 볼 때, 똑같이 이들 음식을 먹을 때도 김치가 생각났다. 김치를 먹어본 사람들에게는 김치가 제공되었으면 이들 음식을 훨씬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나름대로 이들 나라도 음식을 맛있게 먹기 위해 소스가 발달하였지만, 김치가 오래전부터 있었으면 이들 소스보다 미식학적으로 훨씬 뛰어났을 것이다. 물론 내가 한국 사람이어서 더욱 그런 생각을 가졌겠다고 공격을 하겠지만, 꼭 그런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치는 그만큼 훌륭하다. 이를 설명하고 설득하려면 문화를 이야기하여야 하고 훨씬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홍보하여야 한다. 아직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김치의 역할과 탄생의 역사와 문화를 볼 때 제대로 된 홍보와 설명,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과학적 자료가 쌓이면 곧 미각적 체험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김치를 찾는 외국인들이 훨씬 늘어날 것이다.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포도주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소비량도 엄청나지만 포도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유의 전통 음료와 술로도 매우 유명하다. 페루의 잉카콜라, 칠레의 전통술 피스코(Pisco), 아르헨티나의 전통 목동들이 먹었던 차인 마테(Mate)차, 브라질의 라탐 비행기에서 제공된 아마존 전통차 과라나(Guarana)가 역사와 함께 유명하며 고유의 맛도 음미할 수 있다. 아이스크림으로도 남미의 유명한 가시나무인 칼라파테 (Kalafate) 열매로 만든 칼라파테 아이스크림과 브라질의 아사이(Acai) 베리 열매로 만든 아사이볼 아이스크림은 매우 독특하고 맛이 있다.

남미 국가에서 고산 국가이고 원주민 구성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인 볼리비아만 빼고 전반적으로 한국에 대한 인지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았다. 젊은이들은 한국인 관광객과 사진 한 컷을 찍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K-드라마나 K-팝의 영향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국을 많이 아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K-푸드 열기는 여행 중에는 자세히 알기는 쉽지 않다. 한국 음식점이 생기고, 한국 음식점에 현지인들이 오는 비율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정보로만 K-푸드 인기를 알 수 있었다. 다만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오니 K-푸드의 위상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음식점이 크게 늘어 난 것도 아니고, 미국이나 멕시코의 김치케사디야 (Kimchi Quesadilla)나 김치엠파나다(Kimchi Empanada)와 같이 현지 음식에 우리의 음식이 적용되어 유행하고 있는 것과 같이 변형 K-푸드가 많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대도시에는 여전히 피자나 파스타, 중국 음식점 등이 눈에 띈다. 카르푸 같은 큰 마켓에 가보면 여전히 한국 쌀보다 일본 스시쌀이, 한국 라면보다 일본 라면이 더 많이 진열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인 마켓이나 중국인이 운영하는 오리엔탈마켓에 가서 보면 K-푸드의 열기가 뜨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칠레의 한국 마켓에서는 한국 라면, 김치를 비롯 반찬, 식재료 위주로 진열되어 있는 데,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한국 마켓에는 물론 김치, 김 등 반찬들과 함께 압도적으로 한국 라면 등 한국 식품이 진열되어 있다. 손님들 대부분이 젊은 현지인들이었고, 특이한 것은 우리나라의 편의점과 같이 진열대 옆에 작은 의자와 식탁이 있고 마이크로웨이브 오븐과 뜨거운 물이 제공되어 현지 젊은이들이 불닭볶음면 등을 먹으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400년 전부터 계획된 도시로 오벨리스크 광장이 중심가이다. 많은 극장과 음식점이 있는 데, 이 중심가 한가운데 수십 년 전부터 중국인이 운영해온 오리엔탈 식료품점 가게가 있다. 중국 식료품 가게인데도 수년 전부터 한국식품을 찾는 사람이 많아서 가져다 놓기 시작하였는 데, 놀랍게도 지금은 식품의 70% 이상이 한국식품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다양한 라면이 전시되어 있었고, 초코파이, 빼빼로 등 다양한 과자, 김과 미역 등 해조류, 소주와 한국 맥주 등 한국 식품이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쌀은 중국 동북삼성 쌀로 김치는 한국으로 들어오는 중국산 김치와 똑같은 것으로 한국파오차이(泡菜)라는 이름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K-식품의 열기에 대단히 자긍심을 느끼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많았다. K-푸드가 라면 등으로 대변되는 것이 아닌 데 K-음식이 아닌 K-식품으로 자꾸 인식이 굳어질까 걱정되었다. 라면과 초코파이가 K-푸드를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진정한 K-푸드를 이해하려면 우리 쌀로된 밥을 우리 반찬과 함께 먹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K-쌀과 함께 작은 K-전기밥솥을 끼워 팔면 K-푸드 세계화는 그만큼 빨라질 것 같다.

권대영의 한식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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