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언시에 덜미 잡힌 주가조작 일당…자칭 ‘작전’ 주인공도 재판행
檢, 총책급 3명 구속기소…9명 재판행
‘자본시장 리니언시’ 적용 첫 사례
유명 기업사냥꾼, 재력가 동원해 작전 기획
前증권사 간부·축구선수도 선수로 가담
289억 규모 시세조종…부당이득 14억
수정 2026-05-08 23:34
입력 2026-05-08 23:17
검찰이 코스닥 상장사 주가를 조작해 14억 원대 부당이득을 챙긴 시세조종 일당 9명을 재판에 넘겼다. 피고인 중에는 영화 ‘작전’의 실제 주인공이라고 주장해온 유명 기업 사냥꾼과 증권사 간부, 방송인 남편, 전직 축구선수 등이 포함됐다. 공정거래 담합 사건에 주로 활용되던 리니언시(자진 신고자 감면제도)가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수사에 사실상 처음 적용된 사례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신동환 부장검사)는 8일 코스닥 상장사 시세조종 사건을 수사해 총책급 주가조작 사범 3명을 구속 기소하고 공범 6명을 불구속 또는 약식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024년 12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차명 증권 계좌를 이용해 289억 원 규모의 시세조종성 주문을 내고 14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해당 업체 주가는 지난해 1월 14일 종가 1926원에서 한 달 만에 4105원까지 급등했다.
범행은 기업 사냥 전문가 A 씨가 현직 증권사 간부 B 씨를 시세조종 선수로 내세워 작전을 기획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A 씨는 자신을 2009년 개봉한 영화 ‘작전’의 실제 주인공이라고 주장해온 인물이다. 이들은 재력가이자 필라테스 강사 출신 방송인 양정원 씨의 남편 C 씨와 전주 D 씨, 주가조작 선수 E 씨 등을 끌어들였다. C 씨와 D 씨는 현금 30억 원과 차명 계좌, 대포폰 등을 여행용 가방에 담아 B 씨가 재직 중인 증권사 사무실에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 당국의 감시를 피하려 주가를 조절한 정황도 포착됐다. 이들은 투자 경고 종목 지정 가격대를 미리 정해 놓고 그 기준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주가를 끌어올렸다. 실제 전화 통화에서는 “투자 경고 지정 날짜가 2월 4일인데 그때까지 4070원을 넘으면 안 된다”는 취지의 대화도 오간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이들은 주가를 7000원 이상으로 끌어올린 뒤 수익을 나눠 가질 계획이었다. 하지만 공범 중 한 명이 보유 주식을 매도하고 해외로 잠적하면서 범행은 틀어졌다. 주가가 하한가를 기록하자 일당은 프로축구 K리그 출신 주가조작 선수를 추가로 영입해 범행을 이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신동환 부장검사는 “주가조작 일당끼리도 서로를 믿지 못했다”며 “공범 중 한 명이라도 주식을 팔고 빠져나가면 나머지는 ‘휴지 조각’이 된 주식을 떠안아야 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범행은 공범 중 한 명이 대검찰청에 리니언시를 신청하면서 덜미가 잡혔다. 리니언시는 불공정거래 행위자가 위반 사실을 자진 신고하거나 다른 관련자의 범행을 진술·증언할 경우 형사처벌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2024년 1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행위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사건은 내부자가 검찰에 직접 범행을 신고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첫 ‘자본시장 리니언시’ 사례로 평가된다. 앞서 카카오의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사건 수사 과정에서도 검사 직권으로 리니언시가 적용된 바 있지만 재판 과정에서 증인의 진술 번복 문제가 지적되면서 제도 취지에 부합하는 사례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왔다.
신 부장검사는 “시세조종 범죄 수사에는 통상 1년 넘는 시간이 걸리지만 리니언시 제도 활용으로 2개월여 만에 실체 규명이 가능했다”며 “향후 자본시장 범죄에서 리니언시 활용이 늘어나면 수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C 씨가 가족과 공범 관련 사건 무마를 청탁하기 위해 현직 경찰관들에게 향응을 제공한 정황도 포착해 수사 중이다. 또 남부지검 범죄수익환수부와 연계해 부당이득은 물론 시세조종에 사용된 현금 30억 원도 환수할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시세조종 범죄는 주식시장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국민 경제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서민 다중 피해 범죄”라며 “시세조종에 제공된 원금까지 끝까지 몰수하는 등 범죄 수익의 원천 박탈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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