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혜택 없이 일만 더 시키려 해”… 경찰 ‘정년 연장’ 미봉책에 내부 불만
총경 못 단 경정 인력 유출 우려
중수청으로 눈돌리는 베테랑 ↑
경찰, ‘경정 전문관제’ 도입 제안
승진 문턱 낮추는 대신 정년연장
“성과인정 없이 근무만 더 시켜”
“말로만 수사 중요성 외치는 격”
수정 2026-05-10 12:00
입력 2026-05-10 12:00
오는 10월 검찰청이 폐지되고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신설됨에 따라 총경 승진에 실패한 경찰 내 베테랑 수사 인력들이 대거 자리를 옮길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경정 계급 베테랑들을 대상으로 ‘전문관 제도’를 도입해 정년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인력 유출을 막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 내부에서는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미봉책’이라는 불만이 쌓이고 있다.
10일 서울경제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지난달 20일 국가경찰위원회에 경정 전문관자격제, 총경 특진, 법률 전문인력 육성체계 구축안 등을 담은 경찰 인사제도 개선 방향을 안건으로 보고했다. 특히 수사 인력 유출을 우려해 전문관 자격을 취득한 경정급 수사 간부에 대해서는 계급정년 14년을 넘겨도 최대 4년을 더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경찰 관계자는 “경정 계급은 총경 승진이 제한돼 있고, 총경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계급정년에 따라 퇴직해야 하는 구조”라며 “계급정년 때문에 퇴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재직 기간에 쌓은 경력이나 지식이 낭비될 뿐 아니라 본인의 생계와도 직결돼 업무 공정성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정 전문관 자격제가 도입돼 경정급 경찰관이 실무자로 장기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 과도한 승진 경쟁이 완화되고 업무 전문성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경찰의 기대 효과다.
현재 경찰은 승진 적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있다. 2024년 12월 기준 경정 현원은 3537명으로 정원(3214명)보다 323명 많고, 총경 역시 정원 697명에 현원 829명으로 142명 초과 상태다. 이미 총경도 경정도 정원보다 현원이 많아 안 그래도 좁은 승진 문이 더욱 좁아진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정 바로 아래 계급인 경감은 정원이 1만 967명인데 현원은 2만 8409명에 달해 정·현원 차이가 1만 명을 넘는다. 총경으로 올라갈 길이 좁은 상황에서 경정으로 올라올 인원이 압도적으로 많아 향후 경쟁이 악화일로를 걸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검찰의 중대범죄 수사권을 넘겨받아 오는 10월 출범하는 중수청으로 눈을 돌리는 수사 경찰이 늘고 있다. 특히 실무급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베테랑 경정 중 총경 승진에 실패한 인사들이 대거 이탈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총경이 되지 못한 경정은 계급정년 14년이 지나면 퇴직해야 하지만, 중수청으로 자리를 옮기면 이러한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부에서 경정 전문관 자격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계급정년이 연장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베테랑 경정들이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경찰청의 판단이 너무 단순하다는 지적이다. 일선 경찰서 과장이나 경찰청 계장 보직을 맡는 경정과 달리 총경은 일선 경찰서장이나 경찰청 과장급이어서 조직 내에서 받는 신뢰나 권한 자체가 다르다. 경정으로 오랜 기간 실무 일선에서 근무하며 그간의 성과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경찰관들의 마음을 단순히 정년 연장으로 달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경정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총경 승진은 시키지 않으면서 경정으로 계속 근무시켜 업무 노하우를 3~4년간 조직에 바치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며 “20대 젊은 시절부터 평생을 몸 바쳐온 조직으로부터 합당한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경찰관들을 ‘생계 연장을 위해 눈에 불을 켜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수사 경과에서 그간 홀대받던 베테랑 수사 인력의 이탈을 막기 위해 경찰이 중수청 출범을 앞두고 뒤늦게 미봉책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 계급정년 문제나 계급에 따라 보직이 달라지는 경찰 조직 특성상 고위직 승진은 개인에게 조직 생활의 사활이 걸린 문제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수사 경과에 충분한 승진 자리를 제공하지 않은 채 사실상 내부 경쟁만 부추기다 중수청 출범으로 인력 유출 우려가 불거지자 뒤늦게 움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실제 경찰이 내부적으로 수사 경과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것과 달리 수사 분야에서 승진자가 많이 나오지 않는 모습도 확인됐다. 경찰청은 지난달 23일 경찰 서열 5위 계급이자 일선 경찰서장 보직을 맡는 ‘경찰의 꽃’ 총경 인사를 단행했다. 승진자 102명 중 수사 담당 인원은 20명에 그쳤다. 특히 정치권 관련 민감 사안이나 재계가 얽힌 반부패 범죄 등을 주로 수사하는 서울경찰청에서는 승진자 25명 중 수사 경과가 3명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이번 국가경찰위원회에 총경 계급 특진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총경 승진 난도가 극악으로 치달아 인력 유출이 우려되는 만큼 승진 문턱을 조금이라도 낮추겠다는 취지다. 정권에 따라 승진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들에 대한 구제 방안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국가경찰위원회는 “특진 사유는 매우 추상적이어서, 특진 계급을 총경까지 확대하면서 추상적인 특진 사유를 신설하는 것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특정인에 대한 특진이 조직 내부에서 충분히 공감받지 못할 경우 구성원들의 위화감이나 불만을 야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전문성이 인정되고 업무 능력이 우수할 때 승진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경정 전문관 자격을 취득할 정도라면 전문성이 입증됐다고 볼 수 있다”며 “승진은 어려울 것 같으니 전문관 자격을 취득해 계급정년을 연장한다는 것은 다소 모순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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