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떠나는 금통위 대표 ‘비둘기파’ 신성환 “물가 우려 크다”
입력 2026-05-11 15:16
4년간의 임기를 마친 신성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11일 이임 기자간담회에서 “금리 인하를 논하기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국제 유가 고공행진에 따른 물가 상방 위험을 경고하며 중앙은행의 최우선 가치인 물가 안정을 거듭 강조했다.
신 위원은 이날 오전 한은 본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압력이 여전히 크고 미래 물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최근 유상대 부총재가 언급한 ‘인상 사이클 전환’ 가능성에 대해서도 “물가 우려가 꽤 있는 상황으로 해석한다”며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시각을 드러냈다. 앞서 유 부총재는3일 기자간담회에서 “금리 인하를 멈추고 인상하는 것에 관한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하며 금통위원 중 처음으로 금리 인상을 언급한 바 있다.
향후 통화정책의 핵심 변수로는 유가를 지목했다. 신 위원은 “당초 연말 유가를 70달러 선으로 예상했으나 현재는 90달러 수준이고, 경우에 따라 더 높을 수도 있다”며 “유가 고공행진이 장기화되면 생산자가 비용을 더 이상 흡수하지 못하고 소비자에게 전가하게 되는데, 이 경우 물가와의 싸움이 예상보다 훨씬 격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유가가 계속 고공행진하는 상황에서는 우리 경제가 엄청나게 고통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고유가 2차 충격을 최소화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금통위 내 대표적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로 분류돼 온 신 위원이지만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은 달랐다. 그는 “그동안은 물가 상승 압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고 생각해 금리 인하 소수의견을 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며 “지금 의사 결정을 하라고 한다면 예전에 비해 물가 걱정을 훨씬 더 많이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위원은 금리를 동결했던 지난해 1월·4월·8월·10월·11월 금통위에서 홀로 인하 소수의견을 낸 바 있다.
작년 8월 금리 결정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내비쳤다. 신 위원은 “제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작년 8월 금리를 내릴 수 있었던 시점에 좀 더 강력하게 내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금통위는 위원회 조직인 만큼 의사 결정을 100%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임기 중 가장 큰 고민으로는 양극화를 꼽았다. 신 위원은 “경제 비중 10%를 차지하는 섹터(반도체 등)가 전체 헤드라인 넘버를 결정해 버리는 상황에서 나머지 70~80%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성장이 물가에 부담을 주는 정도가 교과서와 실제 상황이 다를 수 있어 해석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반도체 낙수효과에 대해서도 “반도체는 자본 집약적 산업으로 고용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다”며 “반도체 분야가 많은 이익을 내더라도 그로 인한 물가 충격은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최근 국고채 금리 상승과 관련해서는 재정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언급했다. 미국뿐 아니라 국내 시장에서도 재정 상황에 따른 물가 압력이 국채 금리에 반영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원화 저평가 이슈에 대해서는 “한미 금리 역전을 고려해도 원화는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다”며 “국내 거주자의 해외 투자 수요가 빠른 기간에 급격히 증가한 영향”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여러 흐름을 볼 때 환율은 앞으로 하향 안정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국채지수(WGBI)·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 등 금융시장 개방 움직임과 관련해서는 “국제 금융시장과의 연결고리가 강해질수록 쏠림 현상의 강도도 높아질 수 있다”며 정책 당국이 ‘에어백과 브레이크’ 같은 안전장치를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조 개혁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신 위원은 한국 가계의 높은 저축률과 지지부진한 민간 소비를 지적하며 “저축률이 높아 지금처럼 성장률이 높은 상황에서도 민간 소비 증가율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집 사느라 허덕이고 노후를 위해 저축만 하다가 큰 재산(부동산)만 남기고 떠나는 비효율적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개선해, 국민들이 잘 살고 떠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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