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자 크기 설정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이란 대사를 불러도 ‘초치’라 못하는 나무호 화재

<106>호르무즈해협 나무호 피격

靑 ‘피격 미확정’…“오판 아닌 유보”

“추가조사…공격 주체 등 식별할 것”

“이란 관계 있는지는 미지의 영역”강조

국힘 ‘이란’ 빠져 있어…은폐·축소 의혹

이재명 정부, 리스크 관리 능력 분수령 전망

입력 2026-05-12 08:48

지난 4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일어난 한국 선박 화재 사건은 미상 비행체의 타격에서 비롯됐다고 정부가 밝혔다. 외교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의 정부 합동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현장 조사단이 기록한 사진을 공개했다. 선체 하단에서 확인된 폭 5m·깊이 7m 파공. 사진제공=외교부
지난 4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일어난 한국 선박 화재 사건은 미상 비행체의 타격에서 비롯됐다고 정부가 밝혔다. 외교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의 정부 합동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현장 조사단이 기록한 사진을 공개했다. 선체 하단에서 확인된 폭 5m·깊이 7m 파공. 사진제공=외교부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발생한 한국 선박 ‘HMM 나무호’ 화재 원인이 ‘미상의 비행체 2기가 선미를 타격한 데 따른 피격’으로 조사되면서 정부 외교·안보라인 부담이 커지고 있습니다.

청와대를 비롯해 정부 안보라인이 사건 초기 단계에서 피격 가능성에 신중한 접근을 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공격 정황이 확인되면서 정보 판단 체계 전반에 대한 의구심까지 제기되는 분위기입니다. 여기에 미국의 군사 참여 압박 재점화 가능성과 국제 공조 구도 변화까지 겹치며 한국의 외교·안보 대응이 중대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靑 ‘신중모드’…피격 가능성 유보 도마에

11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가 국민의힘 국방위원만 참석한 채 열리고 있다.
이날 국방위 전체회의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HMM 나무호 피격 관련 긴급 현안 질의를 위해 열렸지만, 교섭단체 간 간사 협상 결렬로 국민의힘 단독으로 개회됐다. 연합뉴스
11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가 국민의힘 국방위원만 참석한 채 열리고 있다. 이날 국방위 전체회의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한 HMM 나무호 피격 관련 긴급 현안 질의를 위해 열렸지만, 교섭단체 간 간사 협상 결렬로 국민의힘 단독으로 개회됐다. 연합뉴스

청와대 안보실의 초기 판단이 논란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피격 추정’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개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0일, 피격 상황이 확인되자 NSC 실무조정회의를 열었습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초기 피격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추가 정보 검토 결과 확실하지 않았다(6일 브리핑)”며 예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선체 손상 상태와 첩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직접적인 공격 여부를 단정짓기 어렵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외교부의 조사 결과 피격 정황이 사실상 확인되면서,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정부가 사안을 축소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장동혁 대표는 11일 당 최고위에서 “어제 정부 조사 결과에서 빠진 두 글자가 있다. 바로 ‘이란’”이라며, “우리 정부는 피격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했으나, 피격이 확인되자 공격 주체에 대한 예단을 피하겠다고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국민의힘 소속 성일종(오른쪽) 국방위원장과 김건 외교통일위원회 야당 간사가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나무호 피격 정부 대응 관련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소속 성일종(오른쪽) 국방위원장과 김건 외교통일위원회 야당 간사가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나무호 피격 정부 대응 관련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靑 “나무호 공격 강력 규탄, 이란 관련성은 미지의 영역”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이란 소행 여부를 단정하지 않는 신중 모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위성락 안보실장은 11일 HMM 나무호에 대해 청와대 기자간담회에서 “추가 조사해 공격의 주체, 정확한 기준, 물리적 크기 등을 식별해 나가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민간 선박에 대한 공격은 정당화되거나 용납될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습니다. 위 실장은 “관통 형상 부위를 고려할 때 기뢰 및 어뢰에 의한 피격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습니다.

초기 대응 과정에서 피격 가능성을 확정하지 않은 배경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판단을 잘못 내린 게 아니고 판단을 유보한 것”이라며 “피격 가능성을 인지하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6일 위 실장이 “피격이 확실치는 않다. 침수라든지 기울임은 없었다”고 한 발언을 두고 판단 유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피격이라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 해당 관계자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석연하게 들은 바는 없다”고 말을 아끼는가 하면 “이란이 관련이 있는지는 현재 미지의 영역”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는) 지금 공격의 주체를 특정하지 않고 있다. 특정을 위한 노력단계”라며 “판단이 서는 대로 적절한 수위의 대처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11일 청와대에서 호르무즈 해협에서 피격당한 HMM 나무호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11일 청와대에서 호르무즈 해협에서 피격당한 HMM 나무호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란 반복적인 대응 방식 주목…튀르키예 공격에도 모르쇠

외교가에서는 이 같은 태도 배경에 중동 전쟁 과정에서 반복돼온 이란 특유의 대응 방식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실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시작된 이후 약 두 달 동안 이란이 미군 기지를 겨냥해 보복 공습을 벌이는 과정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 방향으로도 여러 차례 미사일이 날아든 바 있습니다.

당시 튀르키예 국방부와 나토는 “이란에서 날아온 미사일을 격추했다”고 비교적 명확히 설명했지만, 이란은 매번 공격 관여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군사적으로는 충돌 정황이 드러나더라도 외교적으로는 끝까지 직접 개입을 인정하지 않는 방식인 셈입니다. 확전을 피하면서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려는 이란 특유의 패턴이라는 평가입니다.

사이드 쿠제치 주한이란대사가 10일 정부서울청사 외교부에 HMM 나무호 호르무즈해협 피격 사건 관련해 방문한 뒤 청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사이드 쿠제치 주한이란대사가 10일 정부서울청사 외교부에 HMM 나무호 호르무즈해협 피격 사건 관련해 방문한 뒤 청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한 군사전문가는 “나무호 화재 발생 당일 피격된 선박이 프랑스와 중국을 포함해 총 3건이었다”며, “이를 보면 지휘계통 없이 중구난방으로 이뤄진 사건으로, 한국을 겨냥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분석했습니다. 이 같은 분석과 기존 선례를 고려할 때, 이란이 나무호 사건과 관련해 실제 개입 여부와 관계없이 기존 입장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특히 한국은 미국처럼 전쟁 당사국은 아니지만, 중동 에너지, 건설, 교역 측면에서 이란과 일정 관계를 유지해온 국가라는 점에서 이란 역시 외교적 관리 필요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입니다. 무엇보다 이란이 이번 전쟁을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공에 맞선 ‘방어적 항전’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이란은 한국과 같은 제3국과의 정면 충돌을 피하려 할 가능성이 크며, 국제사회에서 ‘민간 선박 공격 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화될 경우 외교적 고립이 심화될 우려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란의 공식 부인 여부와 상관없이, 미국과 서방 진영에서 사실상 ‘이란 연계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흐름이 강화될 가능성입니다. 이 경우, 한국 역시 기존의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청해부대 확대나 해상 호위 지원 등 일정 수준의 군사 협력 방안은 물론, 사실상 파병에 준하는 선택지까지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美압박에 전략적 균형 기조 흔들릴 수도

미국 주도 군사작전인 ‘프로젝트 프리덤’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미 “한국도 이 작전에 합류할 때가 됐다”고 공개 압박한 상황에서 한국 선박 피격까지 확인될 경우 미국 측의 군사작전 참여 요구는 훨씬 강해질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국제 공조 구도에도 변수는 커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은 “항행의 자유”라는 국제 원칙 아래 G7(주요7개국) 등 주요국과 공조를 강화하는 전략에 무게를 둬왔습니다. 다음 달 예정된 G7 회의 역시 이런 외교 기조를 본격화하는 무대가 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지난 4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일어난 한국 선박 화재 사건은 미상 비행체의 타격에서 비롯됐다고 정부가 밝혔다. 외교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의 정부 합동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현장 조사단이 기록한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은 나무호 화재 현장의 모습. 사진제공=외교부
지난 4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일어난 한국 선박 화재 사건은 미상 비행체의 타격에서 비롯됐다고 정부가 밝혔다. 외교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의 정부 합동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현장 조사단이 기록한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은 나무호 화재 현장의 모습. 사진제공=외교부

하지만 피격이 확인되면서 한국의 외교적 공간은 급격히 좁아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보다 분명한 역할을 요구할 수밖에 없으며, 반면 이란 및 걸프 국가들과의 관계에서는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또한, 정부는 그동안 아랍에미레이트(UAE) 원유 우선 공급 체계 구축, 사우디·오만 특사 파견 등 중동 전역과의 균형 외교와 에너지 공급망 안정에 힘써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해상 사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중동 원유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입장에서는 ‘한미동맹·중동외교·에너지안보’가 동시에 흔들릴 수 있는 복합 위기로 번질 위험이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정부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나무호 피격 사건에 대한 청와대의 신중한 입장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습니다. 10일, 정부서울청사 외교부에서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 대사를 불러 소통한 것과 관련해 ‘초치’ 여부에 대한 질문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외교부에서 이란 대사를 만나는 방식과 포맷이었지 초치는 아니었다”고 설명하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습니다. 초치란 상대국 외교관을 외교부로 공식 호출해 항의하거나 설명을 요구하는 조치를 의미하는데, 이번 경우에는 초치라고 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이 같은 신중한 접근은 잘못된 메시지가 군사, 외교,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선박 사고를 넘어서 현 정부의 외교 및 안보 전략 전반에 대한 리스크 관리 능력을 시험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이며,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광고삭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