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에 옷 젖듯…매달 새는 구독료, 당신도 모르는 사이 月 20만원
◆ 박시진의 글로벌 픽 <17>
美 1인당 구독료 월 9만원…‘구독 피로’ 쌓여
“끊는 법도 몰라요”…해지 어려움이 불만 폭발
TV·자동차·속옷·화장지 등 일상 전반으로 확산
넷플릭스·아마존이 바꾼 세상…‘구독 과잉’ 시대
평균 구독 5.2개…기업 75%가 구독 모델 도입
저가형으로 바꾸고 가지치기…‘순환 구독’도 방법
입력 2026-05-14 05:50
월 3900원.
‘구독 모델’이 고객들을 현혹하기 위해 흔히 내세우는 문구입니다. 매달 소정의 금액으로 부담을 낮추는 대신 고객을 묶어두는 ‘록인’ 효과를 노립니다. 과거 신문·잡지·우유 배달에 머물던 구독 모델은 이제 TV·자동차·속옷·화장지 등 일상 전반으로 확산됐습니다.
1999년 넷플릭스, 2005년 아마존 프라임 출시 이후 구독 모델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초기 비용 부담이 줄어든다는 점이 가장 큰 강점입니다. 최근 소비자들은 물건을 영원히 소유하기보다 필요할 때 다양하게 경험해 보는 것을 선호합니다. 항상 최신 버전을 유지해 주는 편의성도 매력입니다.
기업에도 구독 모델은 이익입니다.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하고, 고객들을 꾸준히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구독자가 서비스를 이용하며 쌓은 방대한 행동 데이터를 수집해 초개인화를 꾀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구독 모델이 오히려 소비자 피로감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영국 구독 플랫폼 업체 뱅고에따르면 미국인 1인당 평균 구독 서비스는 5.2개, 월 지출액은 69달러(약 10만 3000원)로 집계됐습니다. 시카고 소재 조사업체 C+R 리서치 분석에서는 1인당 월 구독료가 200달러(약 30만 원)를 넘는다는 결과도 나왔습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연구원에 따르면 소비자 직접 판매(D2C) 기업의 약 75%가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자일스 텅 뱅고 마케팅 부사장은 “구독 상품으로 바꾸면 초기 구매 부담감이 줄어든다”고 분석했습니다.
미국 브루클린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엘리너 루이스 씨는 5년간 이용하지 않은 게임 ‘D&D 비욘드’ 구독을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루이스 씨는 “던전앤드래곤을 안 한 지 5년이 넘었고 좋아하지도 않는데 해지 방법을 못 찾겠다”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뉴욕의 은행원 쇼닛 칼루리 씨는 카페 체인 프레타망제의 ‘클럽 프레’에 월 50달러(약 7만 5000원)씩 내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만큼 이용하지 못합니다. 그는 “선불로 돈을 아낄것 같아 가입했다가 오히려 낭비하는 꼴”이라고 말했습니다.
자동차 업계도 구독 모델을 속속 도입하고 있습니다. 테슬라는 2021년 완전자율주행(FSD) 기능을 월 구독제로 전환했고, 올 초에는 기본 자율주행 기능 일부도 유료화했습니다. BMW는 열선시트 구독 프로그램으로 업계의 빈축을 샀고, 메르세데스 벤츠는 2022년부터 출력 향상 구독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폭스바겐도 지난해 출력 구독을 도입했습니다.
세대 변화도 구독 모델 확산의 배경입니다. 스콧 페이 시러큐스대 마케팅 교수는 “베이비붐 세대는 차를 소유하려 했고 충분한 돈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지만, MZ세대는 다르다”고 분석했습니다.
문제는 해지의 어려움입니다. 긴 전화 대기와 복잡한 웹사이트 탐색을 거쳐야 겨우 해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다크 패턴’이라고 부릅니다. 해지 메뉴를 찾기 어렵게 만들거나 해지 과정에서 여러 번의 클릭과 회유를 거치게 해 사용자가 포기하거나 잊어버리게 유도합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연방거래위원회(FTC)가 해지 절차 간소화 규정을 제안했지만 지난해 연방항소법원이 절차적 문제를 들어 제동을 걸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구독 피로’가 늘어난다는 점이 단점입니다. 일명 ‘가랑비에 옷 젖는’ 비용입니다. 월 5000원~1만 원 수준의 개별 구독료는 저렴해 보이지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음원·소프트웨어·배달·쇼핑 등 여러 서비스를 구독하다 보면 매월 고정 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특히 ‘첫 달 무료’와 같이 무료 체험 기간을 제공한 뒤 자동으로 유료 전환되게 만들어 소비자가 해지를 잊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자신이 어떤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는지 잊어버려 사용하지도 않는 서비스에 매달 돈을 내는 사례도 흔합니다. 원하는 콘텐츠가 여러 플랫폼에 흩어져 있어 울며 겨자 먹기로 여러 서비스를 동시에 구독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고 싶은 드라마나 스포츠 중계가 넷플릭스·티빙·디즈니플러스 등에 나뉘어 다수 플랫폼을 결제하게 되는 비효율이 발생합니다.
한국에서도 OTT·음원·배달앱 등 구독 서비스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구독 피로’ 현상이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기적으로 카드 결제 내역과 계좌 이체 내역을 확인해 최근 한 달간 거의 사용하지 않았거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서비스는 과감하게 해지해야 합니다. 여러 OTT를 동시에 구독하는 대신 한 달에 한두 개만 집중적으로 구독하는 ‘순환 구독’ 전략도 방법입니다.
비용이 부담된다면 넷플릭스·티빙 등이 제공하는 광고형 저가 요금제로 변경하는 것도 좋은 대안입니다. 콘텐츠는 그대로 즐기면서 매달 고정비를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습니다. 결제일을 몰라 원치 않는 자동 결제가 이뤄지는 이른바 ‘스텔스 결제’도 막아야 합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불필요한 고정지출을 정기적으로 가지치기하고, 기업은 묶음 할인이나 유연한 요금제 등 ‘명확한 가치와 편의성’을 제공해야 구독 피로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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