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는 뜨거운데 골목은 왜 춥나
코스피 급등에도 내수 소비 부진 지속
고령화·가계부채에 소비 성향 낮아져
낙수효과·분수효과 둘다 보이지 않아
고용과 부동산 시장 안정이 소비 진작
김현수
논설위원
지난해 6월 11일 이재명 대통령이 한국거래소를 찾아 “국민이 주식 투자로 중간배당도 받고 생활비도 벌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부동산에 쏠린 자산 흐름을 주식시장으로 돌려 경제 선순환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기본소득과 보편복지를 강조해온 그의 말치고는 금융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를 정확히 짚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1년이 지난 지금 시장은 대통령의 기대 이상으로 달아올랐다. 코스피는 168% 급등했고 ‘50만 전자’ ‘300만 닉스’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반도체 랠리가 증시를 끌어올리자 개인투자자들은 포모(FOMO)에 휩싸여 빚투에 뛰어들고 있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 수익률도 크게 뛰었다. 이제 코스피는 경제 뉴스가 아니라 생활 뉴스가 됐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직장인 점심 자리에서도 증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예전 부동산 가격이 그랬듯 주가가 사람들의 기대 심리를 움직이는 시대다.
그런데 이상하다. 증시는 이렇게 뜨거운데 거리 경기는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없다. 고객예탁금은 130조 원을 넘었고 빚투 규모도 36조 원에 달할 정도로 유동성이 증시에 유입됐지만 돈이 넘쳐 소비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돈은 주식시장 안에서 맴돌거나 다시 부동산으로 흘러갔다. 자본이득이 소비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생각보다 약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주가가 1만 원 오를 때 실제 소비로 이어지는 금액은 130원 정도다. 자본이득의 1.3%에 불과하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의 3~4%와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주가 상승이 체감경기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백화점들이 역대 최고 매출을 올렸다는 소식도 나온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명품 소비와 외국인 관광객 증가가 매출을 떠받쳤다. 롯데백화점 본점 외국인 매출은 1년 전보다 103% 늘었고 신세계백화점 본점도 140% 증가했다. 반면 가전제품 소비는 감소세이고 대형마트 매출은 정체 상태다. 자산시장 호황의 온기가 서민 소비까지 번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사람들에게 돈이 생겨도 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평균소비성향은 2010년 이전 75% 수준에서 지금은 70% 안팎까지 떨어졌다. 고령화의 영향이 크다. 은퇴를 앞둔 세대는 자산이 늘어도 소비보다 노후 대비 저축을 먼저 생각한다. 연금을 통한 장기 투자 확대 역시 주가 상승이 곧장 소비로 이어지지 않게 만든다. 증시 상승의 과실이 특정 계층과 특정 종목에 집중된 점도 문제다. 반도체 중심 랠리에서 소비성향이 높은 중소득층은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다. 여기에 금리 부담까지 겹치면서 금융자산 수익은 소비보다 대출 상환으로 흡수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수 효과와 분수 효과 논쟁은 반복됐다. 보수 정부는 대기업과 부유층이 살아야 경제 전체가 살아난다고 했고 진보 정부는 복지와 임금 인상을 통해 소비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정부 역시 분수 효과에 가까운 정책 기조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증시 활황에서는 그런 효과가 잘 보이지 않는다. 코스피가 아무리 올라도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의 체감경기는 여전히 냉랭하다. 반도체 기업 성과급이 늘어도 결국 일부 계층의 잔치로 끝나고 있다.
소비와 내수를 살리는 핵심은 자산 가격 상승이 아니라 고용 안정이다. 코스피가 최고치를 향해 가는 동안 석유화학·디스플레이·유통·제약 업종 등에서는 구조조정이 이어지고 있다. 일자리가 불안한데 주식 수익이 난들 지갑을 열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들은 주가보다 월급과 고용 전망에 더 민감하다. 부동산 시장 안정도 마찬가지다. 전셋값과 집값 불안이 계속되면 주식시장에서 번 돈은 다시 부동산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안전자산이기 때문이다.
돈은 길을 터준다고 반드시 그 길로만 흐르지 않는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한곳에 고이거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증시 활황이 진짜 부의 효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주가 상승만으로는 부족하다. 안정된 일자리와 부동산 시장 안정, 그리고 폭넓은 소비 여력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야만 ‘코스피 상승’이 숫자의 축제가 아니라 실물경제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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