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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오 밈’ 현상이 즐거운 이유

메건 매카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美 국무장관 풍자, 합성 모습에 웃음

정파 뛰어넘는 유머로 현실 고통 덜어

밈에 남은 정신, 타협·공감 기회 줄 것

수정 2026-05-15 05:00

입력 2026-05-15 05:00

지면 31면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을 소재로 한 일명 ‘마코 루비오 밈(meme)’은 최근 수년간 보기 힘들었던 유쾌한 현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마가(MAGA) 성향을 싫어하더라도 잠시나마 함께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미국 정치의 균형을 되찾아 줄 유일한 처방일지도 모른다.

웃음의 소재는 단순하다. 루비오 장관이 자신의 이력서에 끊임없이 새로운 직함을 추가한 데 착안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국무장관에 임명했다. 이후 임시 국가안보보좌관 직함을 줬고, 또 미국 국립기록물관리청장 권한대행까지 맡겼다. 그러자 한 누리꾼은 루비오 장관에게 새 직함을 부여한 합성사진을 만들어 공유했다. 미국 정부가 베네수엘라에서 벌인 군사작전 직후 밈의 초기 버전으로 ‘베네수엘라의 새 대통령, 루비오’가 등장한 것이다.

곧이어 다양한 밈이 즐거움을 주며 퍼져 나갔다. 루비오 장관은 세계적인 축구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새 감독이 되기도 했고 이란의 새로운 국왕 ‘샤’로 변신하기도 했다. 이 밈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풍자의 소재가 된 배경에 대해 저마다 극명하게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통치자 니콜라스 마두로 축출 작전을 눈부신 승리라 보든 끔찍한 전쟁범죄라 보든, 삼류 군악대처럼 우스꽝스럽게 차려입은 루비오 신임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합성사진 앞에서 누구나 웃을 수밖에 없다. 끔찍한 비극을 농담거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반박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엄숙주의가 오늘날 미국 정치를 숨 막히게 만들었던 것이다.

인류는 언제나 끔찍한 일들에 대해 농담을 하곤 한다. 웃음은 그 끔찍한 현실을 견뎌 내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패와 불행을 가볍게 넘기고 장례식장이나 전쟁터에서도 우스갯소리를 던지며 독재와 역병을 향해 조롱을 퍼붓는다. 왜냐하면 종종 그 대안은 그저 무력하게 오열하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어떤 종류의 농담인지가 중요하다. 반유대주의의 어리석음을 꼬집는 고전적이고 유쾌한 농담이 있는 반면 그저 유대인이라는 사실 자체를 조롱거리로 삼는 웃기지 않는 불쾌한 유머도 존재한다. 그래서 ‘루비오 밈’은 훈훈하게 느껴진다. 축하할 일이 전혀 없는 팍팍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 모두 함께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주기 때문이다.

필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공개됐을 때 뉴욕에 살고 있었다. 이 사건은 극단적으로 사람들을 갈라놓았다. 필자의 가족 역시 정치 성향에 따라 나뉘었다. 공화당 지지자인 친척들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할 충격적인 스캔들”이라며 분노한 반면 민주당 지지자인 가족들은 “공화당이 사생활을 악의적으로 이용했다”고 믿었다. 민주당 지지세가 압도적인 뉴욕에서는 후자의 정서가 지배적이었다. 뉴요커의 클린턴에 대한 지지는 굳건했고 오히려 공화당의 도를 넘은 공세에 분노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이 스캔들을 웃음거리로 삼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필자가 근무하던 은행의 직원들, 부동산 중개인들, 동네 구멍가게 주인까지 모두가 클린턴에 관한 농담 하나쯤은 입에 올렸다. 심야 토크쇼 진행자들은 그야말로 신이 났다. 물론 농담의 표적이 될 이유가 없는 무고한 민간인 르윈스키는 너무 많은 비난을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유머 대다수는 비교적 온건했고 우리 모두 잘못됐다고 동의하는 행동을 향해 다 같이 혀를 차는 수준이었다.

오늘날 토크쇼 진행자들은 정파를 초월한 가벼운 농담보다 지나치게 진지한 공격에 집중한다. 코미디언 세스 마이어스가 ‘클랩터(clapter)’라고 일컬은 박수와 웃음이 섞인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이는 관객들이 자신의 정치적 입맛에 맞는 발언에 열광적으로 분노하며 손뼉을 치지만 정작 그 발언 자체는 그다지 웃기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공감대를 찾으려는 일말의 희망마저 포기해 버린 병들어 임종을 앞둔 문화 증상일 뿐이다.

루비오 밈이 이 깊은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밈처럼 유통기한이 너무 짧아 지속적인 치료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미 루비오 밈은 예전보다 뜸해졌고 재미도 덜하다. 머지않아 인터넷의 화제는 다른 것으로 바뀔 것이다. 하지만 이 밈에 생명을 불어넣었던 그 정신마저 없앨 필요는 없다. 미국인들이 정파적 차이를 뛰어넘어 함께 웃을 수 있는 한,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타협점과 공감대를 찾아낼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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