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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다시 태어난 작품…예술의 길을 묻다

■ 이수경·양아치 2인전 ‘페일 베터’

서울·제주 갤러리 2곳서 공동개최

AI·GPS·날씨·달 등 데이터 조합

디지털 신작 ‘달빛 왕관’ 등 눈길

李, 서울포럼 픽셀앤페인트 참여

수정 2026-05-14 23:51

입력 2026-05-14 18:05

지면 27면
기존 설치작품에 생성형 AI 인터랙션 기술을 접목한 이수경의 신작 ‘달빛왕관’은 관람자의 위치 기반 GPS 정보를 토대로 태양과 달의 주기적 변화, 날씨 데이터가 실시간 수집돼 시시각각 다른 형태를 보여준다. /조상인기자
기존 설치작품에 생성형 AI 인터랙션 기술을 접목한 이수경의 신작 ‘달빛왕관’은 관람자의 위치 기반 GPS 정보를 토대로 태양과 달의 주기적 변화, 날씨 데이터가 실시간 수집돼 시시각각 다른 형태를 보여준다. /조상인기자

금 가고 깨진 도자기 조각들을 금(金)으로 이어 붙여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로 베니스 비엔날레(2017) 본전시에 초청 받은 작가 이수경(63).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영국 내셔널갤러리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이 작품을 소장하고 기획전에 초청해온 대표적인 현대 미술가다.

서울시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선정된 이수경의 ‘그곳에 있었다_청계천 2025’는 지난해 10월 청계광장에 설치돼 2030년까지 5년간 대중과 만난다. /사진제공 이수경스튜디오
서울시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선정된 이수경의 ‘그곳에 있었다_청계천 2025’는 지난해 10월 청계광장에 설치돼 2030년까지 5년간 대중과 만난다. /사진제공 이수경스튜디오

그는 한국 전통에서 모티브를 얻지만 이를 동시대적 미술 언어로 해석해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우아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문화적 번역가’라 할 수 있다. 최근 파리 세르누치미술관, 아부다비 공공미술 비엔날레 등지를 누빈 그가 이번에는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AI)이라는 21세기적 매체를 통해 인간의 내면적 신성과 영적 주권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2021년 아트선재센터 개인전 당시 선보인 이수경의 ‘달빛왕관’ 연작들 /사진제공 아트선재센터
2021년 아트선재센터 개인전 당시 선보인 이수경의 ‘달빛왕관’ 연작들 /사진제공 아트선재센터

이수경의 신작 영상작업은 서울 강남구 포럼앤스페이스와 제주 비도갤러리 두 곳에서 공동으로 6월 13일까지 열리는 전시 ‘페일 베터(Fail Better)’를 통해 첫 선을 보이고 있다. 김윤경 독립 큐레이터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이수경 외에도 기술 발전의 이면에 가려진 실체를 탐색해 온 미디어 아티스트 양아치와의 2인전으로 마련됐다. 사무엘 베케트의 산문 ‘최악을 향하여’(1983)에서 전시 제목을 차용한 김 큐레이터는 “AI 테크놀로지의 비약적인 발전이 가져온 급격한 인식의 전환,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열광과 경고의 공존 속에서 예술은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에서 출발했다”면서 “어떤 질문에도 결과물을 내놓고야 마는 AI적 강박이 만연한 세계에서 ‘더 잘 실패하기’ 위해, ‘정교하게 어긋나기’를 거듭하는 두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고 소개했다.

지난 2021년 아트선재센터 전시에서 대규모로 선보인 ‘달빛왕관’은 실시간 데이터와 동기화되는 인터랙션 기술을 통해 호흡하듯 쉼 없이 변화하는 영상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달빛왕관’은 버려진 존재였으나 생명수를 구해 부모를 살리는 신이 된 ‘바리공주’ 설화를 근간으로 삼은 조각 설치작품이다. 신작에서는 달빛왕관에 우주적 순환의 주기를 담았는데 하단부는 GPS로 관객의 현재 위치를 파악한 후 태양의 움직임에 따른 현재 시간을 7개 구간으로 구현하고, 중단부는 실시간 수집되는 현재의 날씨 7가지, 상단부는 달 모양의 변화를 7종으로 결합해 총 343개의 서로 다른 조합을 만들어낸다. 초현실적으로 반짝이는 왕관은 고정된 형태를 거부하고 매 순간 다른 모습으로 관람객과 마주한다.

이수경 작가가 일기처럼 거의 매일 그리는 ‘오, 장미여!’ 연작에 기반한 신작 영상은 장미색 5종, 줄기색 2종에 배경 12종이 더해져 총 120종의 서로 다른 장미를 보여준다. /사진제공 김윤경 큐레이터
이수경 작가가 일기처럼 거의 매일 그리는 ‘오, 장미여!’ 연작에 기반한 신작 영상은 장미색 5종, 줄기색 2종에 배경 12종이 더해져 총 120종의 서로 다른 장미를 보여준다. /사진제공 김윤경 큐레이터

또 다른 신작 ‘오, 장미여!’는 작가가 일기 쓰듯 거의 매일 그려온 장미 연작의 데이터를 디지털 모델링한 후, AI 기반 생성 시스템을 통해 구현한 ‘디지털 육종(育種)’의 결과물이다. 이 작업은 장미색 5종, 줄기색 2종에 배경 12종을 개별적으로 조합할 수 있어 총 120종의 서로 다른 장미가 탄생한다. 디지털 환경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영생’을 획득한 장미가 기술을 매개로 어떻게 무한히 증식하고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시도다.

시간과 공간, 매체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이 작가는 이달 28일 서울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리는 ‘2026 서울포럼’ 특별행사로 마련된 ‘픽셀앤페인트’에서 아티스트 대담으로 참여해 한국적 전통에서 출발한 그의 예술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이야기할 예정이다. 최근 K컬처의 세계적 열풍 속에 ‘K아트’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작가는 자신만의 고유성이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23년 4월부터 매일 드로잉과 글쓰기를 이어와 현재 400점 이상 작업이 누적됐다”면서 “AI 못지 않게, 오히려 더 창의적으로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는 ‘휴먼 인텔리전스’를 장착하게 된 것 같아 뿌듯하다”며 고유한 서사적 역량을 키우는 혹독한 훈련을 밝히기도 했다. 이번 픽셀앤페인트에서는 이 작가의 개별 작업들이 어떤 뿌리에서 출발해 어디를 향해 나아가는지를 내밀하게 들려줄 예정이다. 작가는 중동 지역에 한국 미술을 알린 공로로 제44회 세종문화상을 수상했으며, 지난해 청계천 복원 20주년 기념 서울시 공공미술 지명공모에 당선된 작품 ‘그곳에 있었다_청계천 2025’는 청계광장에서 2030년까지 상설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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