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뒤에야 발견되는 아이들
김경훈 AX콘텐츠랩 디지털편집부장
최근 5년새 아동학대 사망 100명 육박
정인이 이후 ‘해든이’ 사건까지 비극 반복
가해부모 즉각 분리 못하는 법 미비 탓
또 다른 피해 없게 구제 노력 이어져야
입력 2026-05-14 18:10
#아기 울음소리, 아니 비명이 끊이질 않는다.
#엄마는 아기 발목을 잡고 들어올려 거칠게 흔들다가 내던진다. 30초 동안 17번을 반복한 엄마는 얼굴이 빨개져 숨이 넘어갈 듯 우는 아이의 뺨을 수도 없이 때린다.
개봉에 성공했더라도 폭력성 때문에 곧바로 상영 금지 처분이 내려질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면들이 살아 숨 쉬는 내내 현실이었던 아이가 있었다.
고작 팔뚝보다 더 작은 몸뚱이로 도무지 엄마의 학대를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 아이는 지난해 10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갈비뼈 등 온몸 23곳의 골절과 뇌출혈, 장기 파열로 인한 다발성 외상에 따른 출혈성 쇼크였다.
태어나서 눈을 감을 때까지 133일. “제발 좀 죽어” “왜 태어났어”라는 소리만 듣다 떠난 아이의 이름은 해든이(가명)다.
“철제 검시대에 누워 있는 아주 작은 아이는 고단한 짧은 인생이 이제 끝났다는 것처럼 평온한 표정이었던 것 같다.”
3월 26일. 생후 4개월 된 아들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친모 A 씨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검사는 무기징역을 구형하며 울먹였다.
법정에서는 차마 공개할 수조차 없는 부분을 들어낸 19분짜리 편집 영상이 나왔다. 검사의 눈에서는 끝내 눈물이 흘렀고 전국에서 찾아온 엄마 방청객들도 흐느꼈다.
공판이 열린 법원 앞에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아가야 편히 쉬어’라는 문구가 적힌 근조 화환 170여 개가 놓였다.
아이의 죽음에 많은 이들이 함께 분노하고, 슬퍼하고, 또 울었다. 기사 댓글창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가득 채운 ‘해든아 미안해’는 우리 사회의 뼈아픈 반성과 참회였다.
모든 장면이 6년 전 정인이가 하늘로 떠났을 때와 겹친다. 당시 생후 16개월 정인이는 입양된 지 9개월 만인 2020년 10월 13일 양모의 학대로 췌장이 끊어져 치료를 받다 숨졌다.
정인이 사건 이후 국가의 아동학대 대응 체계는 바뀌었다. 연 2회 이상 의심 신고 시 즉각 분리, 학대피해아동쉼터 확충 및 학대예방경찰관 충원 등 국가의 개입을 강화하는 방안이 만들어졌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개정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2021년 3월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법 시행 이후 1년도 지나지 않아 즉각 분리 제도의 실효성·적절성, 열악한 인프라 등이 문제점으로 떠올랐고, ‘아동 최선의 이익’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 지적 속에 담겼던 우려는 그대로 현실이 됐다. ‘아동학대살해죄’가 신설되면서 학대 행위로 아동을 살해할 경우 사형·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이 가능하도록 처벌이 강화됐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목숨을 잃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이 3월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아동학대 살해, 아동학대 치사로 숨진 아이들은 96명에 달한다.
이런 안타까운 사례가 끊이지 않는 배경에는 제도적 공백이 자리한다. 특히 중대한 학대 상황에서 핵심 조치인 ‘즉각 분리’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현재 부모에게 학대 전력이 없는 경우, 살해를 시도하다 미수에 그치면 아동학대처벌법상 ‘아동학대살해미수죄’가 아닌 형법상 ‘살인미수죄’가 적용돼 보호명령을 통한 강제 분리 조치가 어렵다. 반면 아동학대살해미수죄는 즉각적인 격리가 가능하다.
법무부는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학대 이력이 없는 보호자라도 아동을 살해하려 한 경우에는 아동학대살해미수죄를 적용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아이가 살았던 짧은 시간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온몸에서 보였다. 세상에 따뜻하고 행복하고 좋은 것도 많은데 너무나 험한 세상을 산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해든이 사건 검사의 말이 마음 한구석에 계속 남는다. 통계를 들춰보지 않더라도 홀로 학대를 감내하고 있는 또 다른 해든이는 지금도 너무 많다.
아이들이 삶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도록 구해내는 일, 그리고 튼튼한 보호막을 만드는 일.
해든이가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아이의 울음은 아직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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