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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패권전쟁 해법 ‘연구 네트워크’에 있다

김기응 국가 AI 연구거점 센터장

佛 등 AI 중견국도 수조원 투입

미중 사이서 GPU 경쟁은 기본

기초연구 국가간 협력…質 높여야

수정 2026-05-18 05:00

입력 2026-05-18 05:00

지면 31면

냉전 시대 물리학자들은 국적보다 진리를 먼저 공유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동서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1954년 설립됐다. 핵폭탄 경쟁과 별개로 가속기와 검출기를 함께 짓고 데이터를 함께 분석하는 일은 가능했다. 국가 이익의 충돌이 기초과학 협력을 막지 못한 이유는 단순하다. 진리는 나눠도 줄지 않고 실험 결과는 어느 한 나라의 자산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인공지능(AI)을 둘러싼 지형은 그 시대와 닮은 듯 다르다.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데이터센터·모델 개발에서 패권 경쟁을 벌이는 사이 대한민국·캐나다·프랑스·일본 등 이른바 AI 중견국도 자국 AI 주권 확보를 위해 저마다 수조 원을 쏟아붓고 있다. 이 나라들이 힘을 합쳐 공동 개발을 하면 어떨까.

현실은 기대만큼 단순하지 않다. 데이터는 개인정보 규제와 데이터 레지던시 요건으로 국경을 넘기 어렵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전력 인프라는 국가마다 전략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공동 개발에서 상업적 이익이 발생하는 순간 저마다의 이해관계가 전면에 드러난다. CERN의 성공이 예외였던 것은 기초물리학의 결과물이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으로 환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AI 중견국들이 협력하기에 상대적으로 수월한 영역은 인재와 연구 네트워크가 유력한 해답이 될 수 있다. 연구자는 국경을 넘고, 지식은 공유해도 소진되지 않으며, 공동 논문은 특정 국가의 배타적 자산이 되지 않는다. AI의 원리를 이해하는 기초연구에 집중함으로써 상업적 활용과 일정 거리를 둘 수 있고 실제 사업화는 기업의 몫으로 남겨 국가 간 이해충돌의 여지도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국가AI연구거점(NAIRL)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의 지원 하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고려대·연세대·포스텍 4개 대학 45명 교수진이 단일 거점 아래 원팀으로 움직이며 출범 1년여 만에 세계 최고 권위 학회에서 186건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성과의 배경에는 개별 대학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연구실 간 시너지가 있었다. 그리고 이 역량은 이미 해외 주요 AI 연구기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일본 최대 국립연구기관 이화학연구소(RIKEN) 산하 AIP 센터, 캐나다의 대표적인 AI 연구 컨소시엄인 이바도(IVADO) 등 각국의 대표 AI 연구기관들이 한국 파트너로 거점을 선택했다. 미국·캐나다·프랑스·UAE 19명의 해외 교수진이 공동연구자로 참여하고 있는 것도 이 흐름의 일부다. 국제 협력에서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연결 구조다. 거점은 올해 7월 국제머신러닝학회(ICML)에서 이 네트워크를 공개적으로 가시화할 예정이다.

AI 시대에 국가의 기술 주권은 GPU 보유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누구와 연결돼 어떤 지식을 먼저 흡수하고 어떤 글로벌 의제를 함께 설정할 수 있는가도 장기적으로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CERN이 물리학 연구를 넘어 인터넷 월드와이드웹(WWW)의 발원지가 되고 분산 컴퓨팅에 큰 흔적을 남겼던 것처럼 기초연구 협력 네트워크는 예측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국가 역량을 키우기도 한다. 한국이 AI 중견국 간 연구 협력의 중심축이 되고 그 중심에 국가AI연구거점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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