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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고혈압 관리 패러다임

■박현영 노원을지병원 심장내과 교수·전 국립보건연구원장

디지털 헬스 발전으로 실제 혈압 파악

환자도 생활개선에 적극, 처방효과 높여

혈압 관리, 진료실 아닌 일상속 이뤄져야

수정 2026-05-19 05:00

입력 2026-05-19 05:00

지면 30면

54세 여성이 건강검진에서 혈압이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을 찾았다. 진료실에서 측정한 혈압은 150/95mmHg로 고혈압 범위였지만 환자는 “병원에만 오면 혈압이 오른다”고 말했다. 24시간 활동혈압을 측정한 결과 평균 혈압은 130/80mmHg로 정상 범위였다. 이처럼 병원에서만 혈압이 높게 나타나는 ‘백의고혈압’ 환자는 적지 않다. 실제로 고혈압 환자 10명 중 1~2명은 이에 해당한다는 보고도 있다. 만약 진료실 혈압만을 기준으로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거나 증량한다면 불필요한 치료가 이뤄질 수 있다.

이 사례는 최근 고혈압 관리의 방향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과거에는 병원에서 측정한 진료실 혈압이 진단과 치료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자동혈압계의 보급과 디지털 헬스 기술의 발전은 환자의 생활 속 혈압을 보다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그 결과 고혈압 관리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료실 혈압이 환자의 실제 혈압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병원이라는 환경은 환자에게 긴장과 불안을 유발해 평소보다 혈압을 높게 만들 수 있다. 반대로 병원에서는 정상처럼 보이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혈압이 높게 유지되는 ‘가면고혈압’ 환자도 있다. 이러한 경우는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어 오히려 더 위험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병원에서 한 번 측정한 수치가 아니라 환자가 일상 속에서 어떤 혈압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가이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는 가정혈압과 24시간 활동혈압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가정혈압은 환자가 익숙한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측정하기 때문에 실제 혈압 상태를 보다 안정적으로 반영한다. 또 아침과 저녁의 혈압 변화를 확인할 수 있어 현재 치료가 과도한지 혹은 부족한지를 판단하는 데도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24시간 활동혈압 측정은 하루 동안 혈압을 연속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특히 야간 혈압은 심혈관 위험을 예측하는 중요한 지표로 알려져 있다. 정상적으로는 수면 중 혈압이 10~20% 감소하지만 일부 환자에서는 밤에도 혈압이 충분히 떨어지지 않거나 오히려 상승하기도 한다. 이러한 야간 고혈압은 뇌졸중, 심부전, 만성 콩팥병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과거에는 검사 장비의 불편함 때문에 제한적으로 시행했지만 최근에는 기술 발전으로 환자 부담이 크게 줄면서 활용 범위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고혈압 관리의 또 다른 변화는 환자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고혈압은 평생 관리가 필요한 대표적인 만성질환이다. 따라서 병원 방문 시 측정한 혈압만으로는 관리에 한계가 있다. 이제는 환자가 스스로 혈압을 측정하고 생활습관을 조절하는 자기 주도적 관리 체계가 중요해지고 있다. 실제로 환자가 자신의 혈압 변화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면 생활습관 개선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체중 조절, 염분 제한,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과 같은 기본적인 관리가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약물 복용 순응도 역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혈압 관리는 의사의 처방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일상 속 실천이 함께할 때 비로소 효과를 발휘한다.

최근 디지털 헬스 기술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스마트 혈압계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원격 모니터링 등을 통해 환자가 측정한 혈압 데이터를 의료진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이 가능해지고 있다. 환자는 자신의 혈압 상태를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의료진은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보다 정밀한 치료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치료를 넘어 환자와 의료진이 함께 참여하는 협력적 관리 모델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고혈압 치료의 궁극적인 목표는 숫자를 낮추는 데 있지 않다. 환자가 자신의 삶 속에서 안정적인 혈압을 유지하고 뇌졸중과 심근경색 같은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며 건강한 삶을 지속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이제 고혈압 관리의 중심은 진료실이 아니라 환자의 일상 속으로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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