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자 크기 설정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AI 혁명과 국가균형발전

조판기 국토연구원 경영부원장

데이터센터·핵심 인재 수도권 집중땐

지방 청년 일자리 더 줄고 소멸 가속

지역클러스터 조성 등 균형정책 시급

수정 2026-05-20 05:00

입력 2026-05-20 05:00

지면 31면

국토연구원은 최근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이 국토 공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관한 분석이다. 연구 자료에 의하면 AI 기술 수용력의 지역 간 격차는 다른 어느 부분보다도 큰 것으로 나타난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말이다. AI 혁명은 일상을 넘어 산업과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연일 쏟아지는 경이로운 기술 발전 소식에 전 세계가 환호하지만 우리가 이 화려한 무대 뒤편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대한 사각지대가 있다. 바로 ‘공간’의 문제, 즉 AI 기술의 생태계가 초래할 새로운 형태의 지역 불균형이다.

흔히 첨단기술은 시공간의 제약을 허물어줄 것이라 기대되지만 역설적이게도 현실의 AI는 철저하게 장소 의존적이다. AI 산업을 구축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초거대 데이터센터, 이를 감당할 막대한 전력망,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설계하고 비즈니스에 접목할 최고급 혁신 인재가 필수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핵심 자원과 인프라가 블랙홀처럼 수도권으로만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첨단기술을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는 핵심 역량인 ‘수용 가능성’ 측면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격차는 이미 회복하기 힘든 수준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한 ‘디지털 소외’를 넘어 지역의 생존과 직결된 치명적인 문제다. 과거의 지역 격차가 도로망이나 항만·산업단지 같은 물리적 인프라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면 다가올 미래의 격차는 AI 인프라와 지식 자본의 크기에서 결정된다. 비수도권의 전통산업과 중소기업들이 AI를 접목해 파괴적 혁신을 이룰 기회를 잃게 되면 지역의 양질의 일자리는 더욱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일자리를 잃은 청년들은 다시 AI 생태계가 집중된 수도권으로 짐을 싸서 떠날 수밖에 없다. 기술의 진보가 오히려 지역의 혁신 역량을 고갈시키고 대한민국이 직면한 가장 뼈아픈 위기인 ‘지방 소멸’을 가속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다가오는 AI 시대의 국가균형발전 전략은 공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면적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시키거나 단기적인 보조금을 지급하는 과거의 방식도 필요하지만 이러한 정책만으로는 거대한 기술의 파도를 넘을 수 없다. 지역의 거점 도시들에 특화된 AI 혁신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수도권에 집중된 데이터센터의 지방 분산을 유도하는 강력한 정책적 개입이 절실하다. 아울러 지역 대학을 지식의 거점으로 삼아 현장 산업에 밀착된 AI 실무 인재를 육성하고 머물게 하는 생태계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기술의 발전은 막을 수 없는 시대의 도도한 흐름이지만 그 기술이 남긴 혜택의 지도는 우리가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AI가 지역 소멸의 시계를 앞당기는 어두운 그림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침체된 지역 경제를 혁신으로 되살리는 새로운 빛이 될 것인지는 온전히 지금 우리의 공공행정과 치열한 정책적 결단에 달려 있다. 첨단기술의 온기가 대한민국의 모든 도시를 골고루 데울 수 있도록 국가적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 서울경제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광고삭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