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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절약에서 똑똑한 소비 시대로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

입력 2026-05-20 18:20

지면 30면

매달 전기요금을 내고 있지만 대부분은 고지서 금액만 훑어보고 자동이체로 처리한다. 요금이 어떻게 계산됐는지 따져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이 나왔네?” “이번 달은 좀 괜찮네” 정도가 전부다.

그런데 전기요금이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면 어떨까. “주말 낮에 전기차를 충전하면 가격이 50% 할인돼요”라거나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하면 전기요금을 크게 줄일 수 있어요”라고 말이다.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전기차 충전 요금은 시간대에 따라 단가가 다르다. 한여름 심야에 충전하면 낮보다 ㎾h당 100원 이상 싸고 봄가을철 주말 낮에는 50% 할인이 적용된다. 전기차 이용자들은 이미 자연스럽게 요금이 싼 시간에 충전 예약을 걸어두고 일상을 즐기며 요금을 할인받고 있다. 전기를 ‘아끼는’ 것이 아니라 ‘골라서 똑똑하게 쓰는’ 셈이다.

독일은 우리와 비슷하게 바람이 세차게 불어 풍력발전이 활발한 시간에는 요금이 뚝 떨어지고 모두가 에어컨을 트는 무더운 여름 저녁에는 요금이 오른다. 영국의 에너지 유니콘 기업 옥토퍼스는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히트펌프를 모두 설치하는 가정에 “앞으로 10년간 전기요금을 받지 않겠다”는 혁신적 요금제를 시도하고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낮에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해뒀다가 저녁 피크 시간에 꺼내 쓰면 그 집은 전력망에 기대지 않고도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이처럼 재생에너지가 주역이 되는 시대에는 에너지 소비 방식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햇빛은 점심 무렵 가장 강하고 바람은 우리가 잠드는 밤중에 더 많이 분다. 전기가 많이 필요한 시간과 자연이 우리에게 에너지를 만들어주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이 탄소 중립 시대의 새로운 숙제다.

열쇠는 바로 ‘전기요금’이다. 전기가 남는 시간대에는 요금을 대폭 낮추고 부족한 시간대에는 올려서 가격 신호에 따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소비 시간을 옮기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향후 탄소 중립 시대에 맞는 전기 소비 패턴이 조성될 수 있도록 국민 수용성을 충분히 고려해 요금 격차를 점진적으로 확대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넘치는 시간대로 소비가 이동해 피크 부담이 줄어든다. 발전소를 덜 지어도 되고 송전망 건설도 줄일 수 있다. 화석연료 사용이 줄어 94%에 달하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도 낮아진다. 그렇게 전력 회사의 부담이 가벼워지고 수익이 개선되면 그 혜택은 소비자인 국민에게 돌아온다.

물론 쉽지만은 않다. 어쩔 수 없이 비싼 시간대에 전기를 써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하지만 똑똑한 계량 인프라를 갖추고 태양광과 소규모 에너지저장장치를 활용하는 것처럼 새로운 기술로 대비할 수 있는 길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

전기요금은 이제 단순한 비용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에너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주는 거울이자 동시에 미래를 향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후손에게 물려줄 푸르른 지구를 만들고 싶다면 바로 지금이 그 고민을 시작할 적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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