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녀 찾아간 김유신의 말과 ‘탱크데이’ 스타벅스 [최수문 선임기자의 문화수도에서]
조직의 편견이 구성원 행동을 결정
내부서 반대하는 ‘레드팀’ 있어야
수정 2026-05-25 15:56
입력 2026-05-25 11:08
세상에 첫째 가는 억울한 말(馬)을 꼽으라면 7세기 초 신라의 김유신이 탔다가 그에 의해 죽임을 당한 말이 않을까 한다.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하면 다음과 같다.
김유신이 젊은 시절에 동료들과 드나들던 곳에서 ‘천관녀(또는 천관)’이라는 기녀를 만났다고 한다. 그녀를 좋아하게 됐고 이후 자주 그녀의 집을 방문하게 됐다. 고대 경주의 좁은 귀족사회에서 그 이야기는 곧 어머니인 만명부인의 귀에 들어갔다. “나라를 경영할 사람이 그런 곳에 출입한다”고 당연히 혼났다. 김유신은 다시는 그녀에게 안 가겠다고 약속했다. 잠시 동안은 그랬다. 그런데 김유신이 회식을 한 후 말 위에서 깜빡 졸았는데 말이 천관의 집으로 갔다. 말은 아마 평소 김유신이 다니던 길을 기억하고 그랬을 것이다. 화가 난, 아니면 화를 내는 척하면서 김유신은 말을 단칼에 베어버리고 그대로 천관녀의 집을 떠났다는 것이 이 설화의 주요 내용이다.
김유신이 꼭 말을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 아마 천관녀의 집을 찾아간 것은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퍼포먼스를 하려 한 모양이다. 하지만 말이 무슨 죄인가. 천하의 김유신이 탔던 말이니 아마 훌륭한 품종이었을 것이다. 말은 주인의 뜻대로 움직인 것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모든 조직은 동일한 형태를 띤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대부분의 조직 구성원들은 당연히 조직수장의 눈치를 살피며 분위기에 맞추려고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김유신이 ‘꼬리 자르기’를 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나중에 김유신은 미안했던지 천관녀가 죽은 후에 ‘천관사’라는 절을 지어주었다는 미담이 보태졌다.
최근 ‘스타벅스’ 논란에서 ‘말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린 김유신’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스타벅스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5월 18일 ‘탱크데이’라는 이벤트를 했다.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도 사용했다. 곧바로 비판이 나왔다. 그러면 스타벅스는 당연히 사과하고 이를 폐기했어야 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스타벅스는 이것을 조금 고쳐 ‘탱크텀블러데이’와 ‘작업 중 탁’이라는 수정안을 냈다는 것이다. 즉 당초 ‘탱크’라는 단어가 큰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스타벅스와 모기업 신세계그룹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아마 스타벅스 뿐만 아니라 신세계그룹 안에 퍼져 있던 인식 때문일 것이다. ‘탱크데이’ 프로모션이 무슨 문제냐, 일부에서 비판하니 그럼 좀 고쳐 중간에 ‘텀블러’를 넣으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 인식의 기조는 수장이나 그룹의 과거 행동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한다. 즉 천관의 집을 찾아간 ‘김유신의 말’의 생각과 똑같을 듯하다.
조직 안에 정체된 사고는 위험하다. 조직 수장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중요한 이유다. 그럼에도 여전히 크게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느 정권이라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 것이라는 고정관념, 또는 선입견을 이미 갖고 있다. 민간 기업도 마찬가지고, 하다못해 개인 동아리도 그렇다.
설상가상으로 전반적으로 언론이 확장되고 SNS 등을 통해 세상과의 접점은 넓어졌지만 오히려 우리 각자가 가진 인식의 폭은 좁아지는 경우가 생겼다. 특정 언론이나 특정 유튜브, 각자가 좋아하는 것만 보면서 개인의 생각은 점점 편향돼 간다. 최근 들어 누구누구 유튜브를 보는 쪽과 반대의 누구 유튜브를 보는 쪽은 이미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생겼다. 물론 과거에도 그랬지만 최근 들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조직이 바뀌면 ‘폭탄’을 피할 수 있을까. 아마 쉽게 바뀌지는 않을 듯하다. 조직의 의사 결정에는 블루팀과 레드팀이 필요하다. 블루팀은 그 조직의 본래 정책을 추진하는 쪽이고 레드팀은 반대 입장을 제시하는 쪽이다. 특정 조직의 수장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자만할수록 레드팀이 더욱더 필요하다. 김유신이 될 것인가, 아니면 단칼에 목이 베인 말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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